정말 색다른 음악인가
먼저 음악이 그가 공언한 대로 정말 색달랐는가 하는 점부터 따져보자. 이 부분은 음악의 매니아냐 아니면 평범한 대중이냐 하는데 따라 전혀 해석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번에 들고 나온 하드코어를 참신성과 관련해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있는 문제다.
솔직히 그의 하드코어 아니면 핌프 록은 결코 색다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강공 드라이브 음악은 국내의 언더그라운드나 인디에서 수년 전부터 구체화되어왔다. 안티 서태지 연대의 비판 포인트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이미 미국에서 널리 퍼진 것을 끌어와 놓고는 어찌 색다르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을 생각해 보라. 하드코어를 숙지하고있었다면 어떻게 서태지 음악의 모델이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자기 음반시장에서 콘(Korn) 앨범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겠는가. 서태지가 겨냥하는 층은 매니아가 아니라 그런 소리에 경험이 없는 다수 대중이라고 생각한다.
능란한 표절인가, 단순한 영향인가
표절은 유서 깊은 서태지논쟁 품목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하드코어나 핌프 록 그룹인 콘과 림프 비즈킷과의 유사성이 뜨거운 논란을 불렀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설령 그릇이 콘이나 림프 비즈킷일지는 몰라도 안의 내용물은 명백히 서태지의 것'이라는 주장에 변함이 없다. 이 주장이 신문에 공개되자 반격 메일이 즉각 수십 통이 쏟아졌다. '들어보기나 하구 그런 막말을 하냐?'며 콘, 크레이지 타운, 인큐버스, 파파 로치의 곡까지 MP3 파일을 첨부해 표절판정 자료로 삼으라고 사람도 있었다(기회에 공부 많이 되었음!).
<대경성> <인터넷 전쟁>의 대상 곡으로 입방아에 오른 콘의
<인터넷 전쟁>이 말해주듯 서태지는 나름대로 자신의 어법에 충실했고 사운드충격 효과를 증폭하려는 취지에서 유난히도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에 치중했다(의도되고 계산된 음악이란 얘기). 악기 소리를 이겨내야 하는 하드코어 특유의 보컬 측면에서는 기술적 효과를 통해 약점인 적은 성량도 커버했다고 본다. 세션도 좋고 믹싱도 괜찮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고...
이 정도라면 '서태지의 하드코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굳이 크리에이티브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여타 가요 장르는 정말 완벽한 창조성이나 한국의 토속성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묻고싶다. 그렇다고 여기서 가요의 '태생적 한계'를 논하고싶은 마음은 없다. 창작은 생판 처음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스타일을 자기 것으로 화(化)하는 작업으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TV 컴백 쇼의 립싱크논란
하드코어란 기본적으로 증폭된 굉음을 통해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관객과의 피드백을 대전제로 하는 음악이다. 광기 서린 초강성의 사운드는 관객으로 하여금 엑스터시를 유발하고 그 관객의 열띤 반응이 무대에 영향을 주면서 한층 공연 분위기는 고조된다. 그래서 하드코어는 라이브가 필수적, 절대적이다.
따라서 이번 컴백 쇼에서 반주 테이프를 돌리고 노래도 더러 립싱크한 것은 명백한 아킬레스건이다. 첫 방송무대라서 라이브가 어렵다고 판단했다거나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변명은 방송환경을 고려할 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납득할 성질은 되지 못한다. 왜? 그가 들고 나온 음악이 앨범음악이 아닌 공연음악인 하드코어이므로. 서태지라면 얼마든지 정통코스를 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두고두고 말이 나올 부분이다.
결국은 마케팅 책략 아닌가
컴백 소용돌이가 일각에서 '미디어가 덩달아 오버한 쇼'로 규정되면서 언론이 붙여준 '신비주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발휘했다. 전국의 관심이 온통 서태지로 몰렸다. 과연 그가 의도적으로 언론을 애태우는 갈등국면을 연출하여 화제증폭과 앨범판매량의 증가와 같은 실리를 꾀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는 행각에 대해서도 '언론에 대한 린치' 등의 측면에서 쾌감을 느끼는 서태지 팬들도 만나보았다. 가수가 언론에 질질 끌려 다니는 상황이 아닌, 정반대로 가수에 언론이 질질 끌려 다니는 양상을 그 아니면 누가 구경시켜주겠느냐는 것이다. 짓궂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또 하나 중요한 반론거리가 있다. 서태지가 언더와 인디 고유의 음악을 한다고 해서 그 토양이 발전적으로 배양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수혜를 서태지가 독점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하드코어와 같은 비주류 음악의 활성화가 아니라 단지 서태지의 명예축적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안티 측에서 나오는 얘기다.
이것도 지금 당장 결론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전자가 동시에 이룩된다면 물론 최고의 가치를 획득한다. 다만 그가 전기(轉機)를 제공했다고 보는 게 어떨까(사실 세계 음악역사를 보면 한 사람의 슈퍼스타에 의해 판이 바뀌는 사례가 적지 않다). 비주류 정착을 위해서는 언더와 인디 그리고 팬들 모두가 분발해야 한다. 좀 너그럽게 보자.
판매량 문제에 대하여
다시 사적인 얘기로 돌아와서 '이번 앨범이 중요하다. 그래서 만약 실패하면 그도 추락한다'는 언급이 컴백 쇼 중간에 소개되면서 서태지 팬들의 엄하고도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런 얘기를 하는 당신은 자본주의의 노예다' '당신이 평론가냐 사업가지' 등등...
굳이 판매량을 들먹거린 것은 그것을 현 가요에 대한 수요자의 시각을 읽을 수 있는 하나의 객관적 지표로 간주한 탓이다. 개인적으로 거기에는 잘된 음악이기를 바라는 심정, 이번 작품이 그의 음악인생에 분수령이 된다는 생각도 들어가긴 했다.
다 떠나서 서태지가 판매량에 신경 쓰지 않고 앨범을 팬들과의 교류로만 여길 수도 있지만 그는 그런 편안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본다. 다시 한번 판매량 운운은 타 가수와의 중원의 결투라는 미디어적 흥미차원이 아니라 서태지의 상징성이 현실성으로 구현됐으면, 이를테면 사회적 영향력이 음악적 소구력과 결합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한다.
서태지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끝으로 타 가수 지지자들로부터 쇄도한 '서태지를 왜 그렇게 두둔하는가' 하는 항의에 대해선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축약해서 서태지를 '음악가(아티스트)'의 상징으로 보고 그의 등장을 '음악산업'에 대한 대항전선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가요계는 인기스타는 있으되 실험과 도전정신을 가진 음악가는 거의 없다. 모든 파워를 레코드사, 제작자, 매니저 그리고 방송관계자들 이른바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쥐락펴락 한다.
1992-1995년을 호령한 서태지현상의 진정한 의미는 음악산업을 능가하는 음악가의 힘에 있었다고 보며 그가 은퇴한 이후 가요계의 주체는 완전히 음악산업으로 넘어갔다. 음악산업이 판을 주도하면 어쩔 수 없이 음악은 상업성으로 도배된다. '좋은 음악'이 아니라 '팔리는 음악'이 우선되는 것이다. 도대체 10대 팬에 의한 댄스음악 획일화는 누구 책임인가.
음악가정신의 위축과 음악산업의 비대화는 반드시 구조조정되어야 한다. 서태지를 그 시작으로 보고싶다. 반드시 그여야 한다는 당위도 없지만 그말고 기대를 담보할 음악인이 과연 넉넉한가. 서태지가 갖는 상징성은 음악인 그리고 바로 '우리 가요의 새 출발' 아닐까. 서태지의 긍정성을 바로 여기서 찾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