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과잉이 빚어낸 쇠락의 징후 -
'매직 카펫'을 타고 '원더랜드'를 비행할 때까지만 해도 자우림은 승승장구했다. 사회의 곳곳을 세심하게 조감하는 가사와 깔끔한 연주로 꾸준히 서포터스들을 끌어 모았다. 더구나 배후엔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마녀' 김윤아가 있었다.

그 중 하나만을 꼽아야 한다면 단연코 김윤아의 능력을 선택해야겠다. 튀는 컬러를 밴드 속으로 절묘하게 녹여낸 컨트롤 감각은 팬들의 부담감을 덜어주었고, 그녀를 휘발성의 충격이 아닌 지속적 카리스마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멀리 내다본 시야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통산 4집 <04>에서 그녀와 자우림은 지금까지 잘 유지해 왔던 균형을 상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망향(望鄕)'에서 드러나듯 귀를 단번에 곧추 세우게 하는 김윤아의 보컬 실력은 여전하다.

문제는 절제력이 무너져 앨범 전반에 그녀의 입김이 너무 강하게 들어갔다는 데 있다. 보컬라인을 잡아내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다른 멤버들의 존재가 너무 희석되었다. 마치 그녀의 솔로 앨범 <Shadow Of Your Smile> 2탄을 듣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다. 게다가 난데없는 형이상학적 성찰을 늘어놓는 일련의 트랙들 '#!',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Hey Guyz'가 맞물리니(모두 김윤아가 작사했다) 혼란은 가중된다.

자의식의 과잉. 원인은 거기서 찾아낼 수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 하다 보니, 정작 부각시켰어야 할 작품의 심지가 난삽하게 꼬인 채로 남아있다. 가지만 무성하게 늘어뜨린 나무와도 같다. (이건 영어가사와 한국어 노랫말이 퓨전된 것을 트집잡는 것이 아니다.)

'난 나의 팬이야. 난 내 자신과 사랑에 빠졌어' -'팬이야' 중에서
나르시시즘의 극을 잡고 있는 가사를 조율되지 않고 갈지 자 보행을 하고 있는 앨범의 흐름과 결합하니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변잡기의 나열은 유치하지만, 어설픈 작가주의는 위험한 법이다. 헤어 나오기 힘든 유혹의 길이기에 더 그렇다. 이들은 너무 높은 곳을 보고 있지 않은가. 정작 팬들이 듣고 보고 싶은 것은 좀더 낮은 곳에 존재할텐데.

-수록곡-
1. #1
2.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3. Hey Guzy
4. VLAD
5. Good Morning
6. 벨벳소로우
7. 팬이야
8. 르샤마지끄
9. 수사반장
10. Only One
11. 望鄕 (망향)
12. 無言歌 (무언가)
13. 11 (Hidden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