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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에 도전하고 혼합과 파격을 위해 앞장섰던 팝 음악사에 길이 남을 기인, 프린스는 더 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위해 2016년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죽기 전까지도 왕성하게 남긴 보랏빛 낱말들은 주인을 잃었지만 여전히 곁에 남아 시대를 적시는 찬란한 빗줄기가 되어 맴돈다. < Purple Rain >의 40주년을 기념해 IZM 필자가 모여 수록곡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아직 우리 모두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곳에서는 영원토록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보내며 말이다.
'Let's go crazy'
'미치자'는 선동적인 제목 때문에 1984년 당시 국내에서 금지곡으로 묶였던 'Let's go crazy'는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금단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오른 프린스의 대표곡 중 하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프린스와 이 곡의 진면목을 알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프린스를 그저 삐딱하고 외설적인 알앤비 뮤지션으로만 생각하지만 그가 창조한 음악의 밑바탕은 소울과 펑크(funk), 록이다. 그의 노래 중 가장 빠른 BPM을 과시한 'Let's go crazy'는 알앤비의 색채가 희석된 펑크록 스타일의 뉴웨이브로 후반부에 등장하는 프린스의 기타 솔로는 그의 음악적 재능에 한계가 없음을 과시하는 공인된 훈장이며 곡 전체에 스며든 단단하고 타이트한 리듬 기타는 음악을 대하는 옹골찬 태도다.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프린스는 대체가 불가능한 아티스트이자 위대한 뮤지션이며 가장 불온하고 불길한 대중가수다. (소승근)
'Take me with u'
야구에서는 보통 두 번째 타순에 전략 수행 능력치가 높은 타자를 배치한다. < Purple Rain >의 2선을 맡은 'Take me with u' 역시 감독이 극찬할 만한 2번 타자다. 선봉인 'Let's go crazy'가 무섭게 기세를 잡고 'When doves cry'와 'Purple rain'이 연이어 홈런을 칠 때까지 'Take me with u'는 앨범의 기틀을 잡고 영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보랏빛 긴장감을 머금은 인트로는 짧게 끝나고 그 대신 발랄한 선율, 앙증맞은 멜로디와 수줍은 사랑 고백이 분위기를 뒤바꾼다. 상대적으로 차분한 힘과 영롱한 신시사이저 사운드, 그리고 영화에서 상대 배역인 아폴로니아와의 조화로운 듀엣을 가볍게 맛볼 수 있는 프린스 식 그윽한 사랑 노래. 여타 히트 싱글보다 차트에서는 높이 오르지 못했지만 이 비범한 음반에서 유일하게 평범함을 무기로 갖췄다. 괴성을 지르며 기선을 제압하는 트랙들 사이 돋보이는 이유다. 역사적인 라인업을 짠 감독답게 용병술마저 빛난다. (손민현)
'The beautiful ones'
현실과 영화를 넘나드는 스토리를 편곡과 보컬로 극대화했다. 'The beautiful ones'하면 여전히 스웨이드가 먼저 떠오르지만 프린스의 노래 또한 만만치 않다. < Purple Rain > 내에서는 'When doves cry', 'Darling Nikki'와 함께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해낸 음악 역량 과시 곡 중 하나다. 자랑할 만하다. 드림 팝, 일렉트로 팝, 뉴 웨이브를 아우르는 전반부에서 소울과 파워 발라드로 흐르는 후반부까지 틈이 없다. 이러한 진행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것 역시 프린스의 음성. 고유의 팔세토에서 사무치듯 울부짖는 창법으로의 변화를 통해 절정, 극치, 카타르시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앨범과 동명의 영화에서는 상대역인 아폴로니아를 향한 구애 송으로 나오지만 실제 모델은 따로 있다. 프린스의 제자이자, 연인, 그리고 'Nasty girl'로 유명한 여성 트리오 배니티 6의 리드 싱어 배니티(데니스 매튜스)가 그 주인공이다. 사연 있는 노래는 1997년 머라이어 캐리의 매그넘 오퍼스 < Butterfly >의 끝자락에 자리하며 다시 한번 '원곡의 아름다움'을 증명했다. (임동엽)
'Computer blue'
앨범에서 가장 덜 유명한 곡의 총기는 < Purple Rain >의 군계일학을 다시금 부각한다. 전성기를 함께했던 백밴드 더 레볼루션 출신 리사 콜먼과 웬디 멜보인의 도입부 내레이션은 진홍빛 섹슈얼리즘을(Is the water warm enough? / Shall we begin?) 열어젖히고 프린스는 곧바로 사랑의 부재(Where is my love life?)로 인한 질시와 분노를 포효한다. 첨단 문명의 이기(利器)에 대한 관심은 1982년 작 < 1999 >의 'Automatic'과 'Something in the water (does not compute)'를 잇지만, 징그러울 정도로 냉정한 기계의 비인간성과 그로 인한 좌절감을 들춘다. 가창을 간소화한 채 닥터 핑크라는 별명을 지닌 맷 핑크의 신시사이저 베이스와 노골적으로 가공된 미네아폴리스 표 드럼 비트, 친부 존 루이스 넬슨의 'Father's song'에서 기인한 퓨전 재즈풍 간주 등 < Purple Rain >이 동명 영화의 사운드트랙임을 강조하는 필름 스코어적 장치기도 하다. (염동교)
'Darling Nikki'
사랑과 구원, 타락과 성애의 이야기가 뒤섞인 트랙 사이에서도 'Darling Nikki'는 특히 노골적이다. 끈적하고 신음 섞인 보컬과 거친 기타 리프로 섹슈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구성은 단순하면서도 화려하다. 니키라는 여성의 주도로 성관계를 즐긴다는 스토리텔링이 직접적으로 담긴 가사는 욕망의 분출과 해방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빗소리와 백마스킹이 들리는 후반부는 광란 뒤의 허탈감과 공허함을 넘어 영적인 분위기까지 감돌아 곡의 입체적인 포인트를 완성한다. 다양한 해석이 오가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망측할 뿐인 이 곡은 얼떨결에 거대한 사회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앨 고어의 아내 피터 고어는 자신의 딸과 해당 곡을 듣다가 충격을 받고 학부모음악조사센터(PMRC)를 설립했다. 거친 가사가 난무하는 대중음악으로부터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지키자는 의도였다. 과연 그들이 아이들을 잘 보호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꽤 멋진 디자인의 라벨을 만들긴 했다. 그저 호텔에서 밤새 즐겼을 뿐인 'Darling Nikki'는 그렇게 'Parental Advisory (부모 주의 요망)' 탄생의 씨앗으로써 팝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김태훈)
'When doves cry'
설탕의 제거로 음료 산업의 새 지평을 연 '제로' 음료의 탄생처럼, 위대한 발명은 간혹 '빼기'를 통해 실현된다. < Purple Rain >의 2막을 여는 호쾌한 신스팝 트랙 'When doves cry'는 이와 같은 뺄셈의 미학이 발현된 대표적 사례다. 'When doves cry'가 제작되던 1984년, 곡의 흐름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프린스는 밋밋하다 느껴진 베이스 파트를 통으로 들어내 버리는데, 이러한 감행이 위대한 명곡을 만드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설탕 없이도 충분한 단맛을 내는 제로 콜라처럼, 드럼과 신시사이저가 톡톡 튀는 곡은 베이스라인의 존재 없이도 넘치는 그루브를 뽐냈고 동시에 뒷맛 또한 끈적임 없이 깔끔했다. 이 단 한 번의 뺄셈을 통해 아티스트 본인조차 성에 차지 않았던 곡은 단숨에 싱글 차트를 점령, 당해 최고 히트곡 반열에 당당히 올라섰고 그 과감하고 개혁적인 시도로 이후 모든 발명의 바로미터로 평가됐다. 하나의 곡으로 대중가수와 혁신가의 칭호를 동시에 쟁취한 것이다. (이승원)
'I would die 4 u'
3분이 채 되지 않는 'I would die 4 u'는 대곡 지향적인 프린스의 커리어를 통틀어 보기 드문 소곡이지만 도리어 그의 진가를 파악할 수 있는 탁월한 윤색의 관문이 된다. < Purple Rain >을 상징하는 다채로운 신시사이저가 맞물리며 본론으로 치닫는 도입, 차후 트랙 'Baby I'm a star'와 황홀하게 맞물리는 엔딩까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옹골찬 구성은 완벽주의의 산물이다. 스스로 무성의 존재이자 평화의 상징임을 말하는 가사는 그가 일생을 걸쳐 추구한 자유의 언어다. 제목의 언어유희에는 그의 장난스러운 흔적마저 고스란히 담긴다. 프린스의 총체를 짧고 굵게 체득하고 싶다면 단번에 이 곡을 권한다. '당신을 위해 죽을 것이다'는 의미는 소멸마저 각오한 아가페적 희생정신과 더불어 음악 앞에서만큼은 거짓된 삶을 살지 않겠다 약속하는 결사의 전언이었다. (장준환)
'Baby I'm a star'
'I would die 4 u'의 진중한 고백을 이어받아 스타가 되는 미래에 대한 갈망은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넘버로 탄생한다. < Purple Rain >이 발매된 1984년보다 3년이나 빠른 1981년에 작업을 시작해 이후 그의 밴드 더 레볼루션이 펑키(Funky)한 색채를 더한 곡은 드럼 라인이 탄탄하게 뼈대를 세운 판에서 현악기, 피아노가 연주하고 'Doctor'를 외치면 등장하는 '닥터 핑크' 매트 핑크(Matt Fink)의 신시사이저 솔로가 백미이다. 디스코, 록 등 명확한 장르 구분이 없어 얼핏 장난스럽게 느껴지지만 철저히 계산된 앙상블은 실제 1983년 퍼스트 애비뉴 쇼에서 녹음된 음원을 기반으로 하며, 1985년 그래미 어워즈, 2007년 슈퍼볼 XLI 하프타임쇼를 비롯한 수많은 라이브 버전이 입증하듯 공연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확실한 레퍼토리. 역시 작품을 최고조로 이끌며 클라이맥스인 'Purple rain'까지 견인한 'Baby I'm a star'로 프린스의 염원은 현실이 되었고 잊히지 않을 기록으로 새겨진다. (손기호)
'Purple rain'
처음 작사를 제안받은 플리트우드 맥의 스티비 닉스가 10분 길이의 오리지널 반주에 질겁해 거절했다는 이야기나 앨범에 실린 것이 사실상 자선행사에서 부른 라이브 녹음본이라는 비범한 비하인드는 노래 자체의 압도적인 찬란함 앞에서 초라할 뿐이다. < Purple Rain >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타이틀 트랙은 가히 영적 체험이다. 찬찬히 감정의 파동을 자아내는 도입부와 배경에서 나지막이 눈물을 훔치는 현악기, 더욱 구슬피 흐느끼는 일렉트릭 기타 솔로가 하나 모여 '보랏빛 비'를 뿌리고 쉬이 걷히지 않는 안개를 남긴다. 그의 존재에 감동한 하늘이 선물하듯 경기장에 비가 내리던 2007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엔딩으로 'Purple rain'을 연주하던 프린스의 모습은 가히 신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 발매 당시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한 곡은 아티스트 사후인 2016년 차트 4위로 그의 여러 명곡 중 가장 높이 오르며 프린스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한성현)
리드 : 장준환
이미지 편집 : 김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