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적인 도약보다는 여유로운 횡적 확장에 가깝다. 브레이크 구간이 인상적인 'Deep learning'부터 영국 개러지 사운드와 친교하는 'Track suit', 그리고 드럼 앤 베이스와 교집합을 둔 'Turtle' 모두 기존 취향을 한층 더 넓힌 심화 버전이다. 육성보다는 전자 악기 배치가 중요한 장르로 한걸음 이동한 만큼 코덱 등 각 프로듀서의 트랙 지휘에 온전히 몸을 맡겼고, 블라세 스스로는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로 치환하는 유연함을 발휘한다.
냉랭한 벌판같은 비트 위 전차가 질주하는 듯한 랩은 여전하다. 반주와 랩 모두 자칫 따분하게 흘러 갈 수도 있지만 다채로운 지원군이 적절한 시점에 등장해 허점을 보완한다. 날카로운 전자음이 전장을 잠식할 것 같은 불안감이 스칠 때 청하의 목소리가 등장하여 기계 사회의 공기를 순식간에 뒤바꾸고, 이성적인 쇠맛에 정통한 실리카겔의 김한주도 독특한 계산법으로 변화구를 날린다. 랩의 영역을 넘어서 달성한 준수한 협업의 산물은 < Debugging >에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성과다.
새롭게 발매한 베타 버전에 오차는 크지 않다. 개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테두리를 깔끔하게 가다듬어 포용력도 넓혔으니 이 계산값에 접근한 방식도 꽤나 섬세한 편이다. 익숙한 이름을 보고 호기심에 입장한 이들도, 포탄 사격같이 퍼붓는 블라세의 랩이 부담스러웠던 이들도, 혹은 지루한 반복의 늪에 빠질까 두려웠을 전자음악 초심자도 모두 환영할만한 결과물. 점점 최적화에 가까워지고 있다.
- 수록곡 -
1. Deep learning
2. Track suit (feat. Tade Dust)

3. Mean
4. Turtle (feat. 청하)

5. Blue screen (feat. 김한주)
6. Reset (feat. p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