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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아티스트 간 격전이 이뤄지는 곳은 핫 100 싱글 차트이나 지난 6월 1일 자 빌보드(Billboard)에서 피바람이 분 것은 앨범 차트였다. 그 어떤 선공개 싱글도 공개하지 않은 채 화제성을 꾹꾹 눌러 담아 발매했던 빌리 아일리시의 신보 < Hit Me Hard And Soft >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에 밀려 2위로 데뷔한 것이다. 전작 < Happier Than Ever >보다 10만 장 이상 높아진 수치로 자체 첫 주 판매량을 갱신했지만 테일러 스위프트의 5주 차 성적에 밀려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무서운 팬덤을 등에 업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간단한 승리로 보이지만 그 내막에는 살기어린 흙탕물 싸움이 있다. 두 아티스트가 차트 1위 점령을 위해 온갖 리믹스 음원과 다양한 실물 음반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후배를 저지하기 위해 데모 음원을 추가한 디지털 음반을 할인가로 발매했고, 빌리 아일리시는 그에 대한 반격으로 아카펠라 보너스 트랙, 속도를 낮추고 리버브를 추가한 리믹스와 스페드업(Sped up) 믹스 음원 등을 내놓으며 음반 할인도 감행했다.
쟁쟁한 뮤지션 사이 벌어지는 기 싸움이야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유구한 전통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사람들도 많겠다. 그렇지만 이번 대결 구도는 스트리밍 시대 음반 발매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 여전히 실물 음반만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빌보드와 영국의 오피셜 차트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음악 시장의 디지털화에 발맞춰 음반 단위 음원 구매를 판매량 측정에 포함했고, 2014년에는 스트리밍 수치 또한 일정한 계산 방식에 따라 반영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부상에 따라 음악 소비 방식의 헤게모니가 실물 음반에서 음원으로 변화한 양상을 받아들인 것이 지금에는 폐단의 원인이 된 것이다.
한 앨범 당 최대 16곡까지만 계산하는 영국과 달리 미국 빌보드는 판매량 책정에 있어서 앨범 트랙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곡 수가 많을수록 유리한 판이 되었다. 작년 36곡을 수록한 모건 월렌의 < One Thing At A Time > 못지않게 전체 31곡을 넣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보는 상업적 성과에 매몰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생각보다 저조한 스트리밍 수치를 의식해 앨범 공개 4일 만에 빠르게 추가 트랙을 끼워 넣은 위켄드의 < Dawn FM >과 포스트 말론의 < Twelve Carat Toothache > 등 꼼수의 예시는 일일이 언급하기 벅찰 정도로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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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상황이 인터넷 세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음원의 대두로 감소했던 실물 음반의 소비가 수집 문화와 만나 바이닐 시장의 확대라는 뜻밖의 흐름을 만났고 이에 따라 많은 가수가 여러 종의 음반을 출시하여 팬덤의 화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려한 색을 입혀 꾸민 디스크와 다양한 앨범 커버로, 음악에 대한 심미적인 접근으로 보기에는 평균 가짓수가 너무나도 심하게 늘어나는 탓에 수집욕 자극 방안으로만 보일 뿐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더 나아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 Guts >나 테일러 스위프트의 <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 등 보너스 트랙을 버전 당 하나씩 나눠서 삽입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범람하는 상술은 팬들의 지갑 외에 지구에게도 더욱 극심한 부담이 된다. 빌리 아일리시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은연중에 자극하며 지적한 내용도 각종 바이닐 베리언트(variants)의 발매가 환경 오염을 초래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현재 시장의 과포화 상태를 비판하는 여론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가수들도 판매량과 숫자놀음을 끝내 포기하진 못하는 모양이다. < Solar Power >의 저탄소 상품이랍시고 CD 대신 종이 부클릿만을 넣은 로드도 색색의 바이닐 음반을 출시했고, 빌리 아일리시도 재활용 재료를 사용했다는 표기와 함께 공식 스토어에 여덟 종류의 바이닐과 이외 CD, 카세트테이프를 발매했다.
뻔한 얘기지만 국내 K팝 시장 얘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기본 음반 구성부터 여러 종류로 제작하는 데에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표지 디자인까지 멤버별로 따로 만드는 경우까지 생겨났고, 더군다나 동봉되는 포토 카드와 엽서 등까지 랜덤으로 들어가다 보니 특정 버전을 원하는 팬들은 고가의 합본 세트를 구매하거나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 대량으로 앨범을 사게 되는 상황이다. 인터넷상에서의 거래를 위해 포토 카드만 빼고 남은 앨범을 중고로 판매하는 경우는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다.
기형적인 구조를 더욱 심화하는 것은 팬 사인회의 존재다. 음반 구매자를 대상으로 행사 참여 인원을 뽑다 보니 소속사는 다량의 앨범 구매를 팬들에게 사실상 강제하고, 더군다나 코로나19 이후로 생겨난 영상통화 팬 사인회와 대면 행사의 참가 인원 감소로 인해 경쟁은 더욱 극심해졌다. 즉 어느 순간 말도 안 되게 올라간 K팝의 음반 판매량은 해외 인기뿐만 아니라 수치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소속사의 영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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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도어 레이블의 대표 민희진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하여 화제가 되었던 '밀어내기'도 이와 관련된 사안이다. 주식의 공매도 마냥 팬 사인회를 개최하는 중간 판매업자에게 먼저 넘겨준 물량을 초동(발매 첫 주) 판매량에 합산하고, 이 수량을 소진하기 위해 기약 없는 팬 사인회가 계속되는 것이다. 아이돌은 음반 활동이 끝나고도 반복되는 일정에 지치고, 팬들 또한 이를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하게 된다. 심지어는 이 물량을 다 팬 사인회에서 처리하지 못하여 음반의 총판매량이 일주일 판매 수치보다 모자라는 경우도 발생하고는 한다. 게다가 남은 음반이 기부라는 명목으로 각종 복지 단체에 던져지거나 아예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무의미한 차트 싸움에 가수와 팬, 지구 모두 눈물 흘리는 형국이다.
지금의 사태는 차트, 음반사, 수집 심리 등 수많은 요소가 복잡하게 뒤엉켜 하나로 원인을 특정할 수가 없다. 음반 시장에 찾아온 불황을 되살리기 위해 고안된 방안은 온갖 부작용을 만들어냈고, 오랫동안 음반 판매량이 낮다며 지적 받아온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K팝이 주도하는 인플레이션 아래 팬덤 쥐어짜기 노하우를 역으로 전파하는 중이다. '음악' 산업의 시대가 아니라 음악 '산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다.
사실 '불황'과 같은 수식어로 음반 시장 위기론이 대두된 역사가 길기에 요즘의 상황은 특별히 새로운 일이 아닌 듯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거 이런 위기론은 음악이라는 분야에서 핵심 중 하나로 여겨지는 음반의 권위 하락을 우려하는 입장에서 나온 주장이었고, 따라서 궁극적인 목적은 음반의 중요성을 역설(力說)하고 보존하는 것이었다. 수집 문화와 스트리밍 시스템 등 여러 요소와 맞물려 숫자만 보았을 때는 오히려 다시 살아나고 있는 오늘날의 시장에서 음반은 역설(逆說)적으로 그 자체적인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순수성 담론은 굉장히 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원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아티스트와 A&R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예술성의 신기루로 돈을 벌어들인다는 투명한 목적을 포장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곳. 지금의 이 풍요 속의 빈곤은 모두에게 더 뼈아픈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