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자아 발현과 장르적 무경계를 지향하는 숱한 동료들처럼 걸 인 레드 역시 내면의 고뇌와 고통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들 사이에서 그를 돋보이게 만드는 무기는 균형감각이다. 커밍아웃 후에도 본인의 정체성을 창작의 도구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탄탄한 가치관이 느껴지고 공격적인 장르까지 서슴없이 시도하는 음악에서도 멜로딕한 선율과 편안한 보컬이 능숙하게 중심을 잡는다. 개인적인 선언이나 공표보다는 매력적인 독백에 가깝고 이에 동의하는 이들이 걸 인 레드의 공감대에 자발적으로 따른다.
이전보다 변화된 음악도 그의 너른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둠에서 벗어난 빌리 아일리시가 그랬듯 밝은 햇살을 마주하는 것도 각자의 방식대로다. 이모코어를 차용해 어둑했던 전작의 서곡은 동요와 같은 'I'm back'으로 대체했고 넘치는 에너지는 세련된 록 사운드 안에 녹여냈다. 추임새가 인상적인 'Too much', 붉은 온기 속 사브리나 카펜터의 냉기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You need me now?'는 기타 스트로크 위 그의 강점을 드러내는 구간이다. 자기 고뇌에서 한 단계 벗어난 후련함과 자신감을 표할 맞춤형 수제 큐레이션이다.
넘실거리는 여러 스타일에도 안정적인 진폭은 연속 청취를 이끄는 동력이다. 진심이 더 강하게 드러나도록 내레이션을 삽입한 'Ugly side'부터 느닷없이 댄스 비트를 차용한 마지막 곡 '★★★★★'까지, 독특한 표현과 형식이 군데군데 시야에 걸리지만 툭 튀어나오는 일은 없다. 굳이 연번대로 들을 필요도 없거니와 순서를 지켜도 크게 감상을 방해하지는 않는 다소 특이한 무난함,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중용의 맛이 깔끔하지만 너른 대중화를 위한 분기점이 없다는 사실이 유일하게 텁텁하다.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쌓아가는 정석적인 활로 중 발판이 될 튼튼한 음반이다. 유사한 스타일이 많은 공간에서 어느 정도 독자적인 캐릭터 각인에 성공했다. 미래를 보증할 수 있는 이러한 신인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이번 여름에는 그 누구보다 본인의 내면을 팝으로 빚어내는 데 능숙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윤곽선, 그리고 진중하고 따뜻한 연대의 표상인 보이지니어스가 지닌 가장 붉은 마음을 동시에 겹쳐 보자. 그 교차점에는 여유롭게 웃는 걸 인 레드가 있을 것이다.
- 수록곡 -
1. I'm back
2. Doing it again baby
3. Too much
4. Phantom pain
5. You need me now? (feat. Sabrina Carpenter)
6. A night to remember
7. Pick me
8. Ugly side
9. New love
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