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팝은 위기인가?'는 참으로 식상한 담론 주제다. 마치 언론이 우리나라 경제가 늘 어렵다고 징징거려서 불안하게 생각해온 것처럼 K팝도 항상 위기라고 생각해왔다. 이것은 K팝의 세계적인 인기가 과연 진짜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이 열기가 언제 수그러들지 모른다는 불안한 걱정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염려하는 동시에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인 것과 달리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위기가 맞다. 다음은 그렇게 판단한 주관적이지만 중요한 원인 네 가지다.
1. 든든하지 못한 중간층
군복무로 공백기를 가진 방탄소년단과 계약을 앞두고 활동이 적었던 블랙핑크 두 그룹의 일시적 부재를 채울만한 그룹이 많지 않다는 것은 K팝의 허리이자 중간층이 허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나라의 경제가 튼튼하려면 중소기업이 많아야 하고 바람직한 국가도 상류층보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하는 것처럼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외에도 다른 K팝 아이돌 팀들의 활동과 그 결과가 가시적으로 보여야 한다. 이 중간층에 분포한 팀들의 팬 층이 두터워져서 K팝 아이돌의 분포도는 UFO처럼 타원형이 되어야 한다.
2. 가창력
이 문제는 K팝 아이돌에겐 억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아이돌뿐만 아니라 외국의 아이돌 가수들이나 기성 가수들 중에서도 노래를 못하는 싱어는 항상, 언제나 있어왔기 때문이다. 밥 딜런은 대중음악 역사에서 한 획이 아니라 두 획, 세 획을 그은 위대한 아티스트지만 그 누구도 그를 뛰어난 보컬리스트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에게 월등한 가창력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많은 가수들이 밥 딜런의 노래를 끊임없이 리메이크하는 이유는 그 훌륭한 노래를 밥 딜런보다 훨씬 더 잘 부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말하는 이유는 노래 실력 문제가 오직 한국 아이돌 가수한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근 몇몇 그룹들의 가창력 논란을 덮어둘 순 없다. 해외의 대형 무대에 오른 그룹들은 K팝 전체를 대표할 수 있고 또 아이돌은 노래를 업으로 삼은 가수라는 합집합의 부분집합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돌도 가수다. K팝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노래 연습을 더 많이 할까, 안무 연습을 더 많이 할까? 직관적으로 기우는 쪽이 답이다.
특히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한다면 가창력에 더 충실해야 한다. 외국인은 가수가 노래를 못하면 아무리 퍼포먼스가 좋고 외모가 뛰어나도 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에 휘트니 휴스턴이 월드 투어 일환으로 호주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할 때 심한 감기에 걸렸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 기침을 했고 그 시원시원하고 청명한 고음을 내지도 못했다. 인정 많은 우리나라 관객은 휘트니 휴스턴에게 응원의 박수와 환호를 보냈지만 호주 관객들은 야유하면서 물병과 쓰레기를 무대 위로 던졌다. 천하의 휘트니 휴스턴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욕을 먹는 정도로 외국은 가창력을 중요시한다. 이런 해외 무대에서 음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실력으로 노래를 한다면 외국인들은 K팝 가수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속사의 막강한 파워로 해외에 진출한 그룹들이 가창력으로 비판 받으면 결국엔 다른 그룹들에게 피해를 준다.
|
3. 팬들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음악 외적인 부분 타령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소비하는 마지막 필터링 장치이자 최후의 소비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수는 노래와 가창력으로 평가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아이돌 팬들은 음악 자체보다는 대형 기획사 소속이나 외모가 아름답고 멋지면 무조건 좋아한다. 그래서 4대 기획사 소속의 팀이 아니면 아무리 곡이 훌륭하고 노래를 잘해도 주목 받기 힘든 게 현실이며 음악보다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코디, 멤버들의 비주얼 그리고 퍼포먼스가 해당 가수를 좋아하는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제일 중요한 노래는 뒷전이다. 뮤직비디오나 퍼포먼스 영상 없이 K팝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을 듣는다면 지금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지 반문하고 싶다.
팬들은 음악이 아니라 멤버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신곡이 나오면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아도 무작정 소비해서 음악방송 1위와 음원차트 인을 만들어준다. 이것은 왜곡된 팬심이고 변질된 의리다. 안 좋은 노래를 기여코 히트곡으로 만들어주니 소속사는 음악에 대해 느슨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그들의 노래는 점차 하향 평준화된다. K팝의 위기는 바로 이 악순환에서 기인한다. 결국 가수와 뮤지션은 음악과 가창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 제일 중요하다.
4. 청취 층의 나이가 어려짐
아일릿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이른바'초통령'은 아이브와 뉴진스였다. 이것은 아이돌 음악의 주 소비층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으며 그 인기의 순환이 빨라진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래서 요즘 K팝 아이돌 노래는 하이틴(High teen) 음악이 아니라 로우틴(Low teen) 음악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낮은 상황에서 음악의 청취 층 타겟 연령을 어리게 잡으면 그 수요의 파이는 그만큼 줄어들고 종국에는 우리나라 음악 업계의 또 다른 위기로 작용할 것이다. 앞으로 로우틴 지향의 음악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령이 좋아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대중음악을 지향해야 K팝의 생명력은 연장되고 뿌리는 깊어지며 그 폭은 넓어진다. 이런 음악을 통해서 K팝은 하나의 온전한 음악 스타일로 인정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