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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나요?” 유명 음악가들이 종종 듣는 질문이다. “예술은 예술의 선에서 기능할 뿐이다”로 일축하는 이들도 있으나 음악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신념으로 일생을 고스란히 바친 이가 있다. 1945년 자메이카 북부 나인 마일 생으로 2025년 탄생 80주기를 맞는 밥 말리 얘기다. 2024년 3월 13일 한국에서 개봉한 < 밥 말리: 원 러브 >는 탄탄한 연출과 주옥같은 수록곡으로 레게 뮤직 화신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담아냈다.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오른 < 킹 리차드 >(2022)의 감독 레지날도 마커스 그린 연출에 영국 연극계에서 기량을 닦은 킹슬리 벤 아디르가 레게 아이콘으로 분했다.
1963년 또래 친구였던 피터 토시(Peter Tosh)와 버니 웨일러(Bunny Wailer)와 결성한 웨일러스는 그대로 레게 음악의 역사가 되었다. 덥 음악의 권위자 리 “스크래치” 페리가 가담했던 초기의 실험적 형태와 자메이카계 영국인 프로듀서 크리스 블랙웰과 손잡고 아일랜드 레코드(Island Records)에서 발매한 중 후기작들은 서구권 대중음악 양식을 받아들여 높은 대중성을 띄었다. 그룹의 이름이 아 밥 말리 혼자 우뚝 솟은 형국이지만 웨일러스를 빼놓곤 밥 말리 디스코그래피를 설명하기 어렵다.
음향 자체도 혁신적이었지만 밥 말리 음악을 특별하게 만든 건 메시지였다.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를 향한 숭배와 자메이카 흑인들에게 있어 일종의 유토피아였던 아프리카로의 귀환을 모태로 하는 일종의 종교이자 사회운동 “라스타파리(Rastafari)”는 반전과 평화와 사랑, 화합의 언어로 치환되어 전 세계 곳곳에 퍼졋다.
1970년대 중반 국민당(People's National Party)과 자메이카 노동당(Jamaican Labour Party)의 대립으로 국가 분열에 이르렀던 상황에서 말리는 스마일 자메이카(Smile Jamaica) 콘서트를 열었다. 괴한의 습격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공연을 강행한 일련의 과정은 음악 다큐멘터리 < 누가 밥 말리를 쏘았나? >에 잘 묘사되어 있다.
고난과 절치부심 그리고 재기, 말리의 서사다. 스마일 자메이카 콘서트 시기의 위협으로 인한 심적 두려움을 극복한 말리는 1978년 원 러브 피스 콘서트(One Love Peace Concert)로 다시금 자메이카 국민 앞에 선다. 상기한 < 밥 말리: 원 러브 >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순간이며 말리의 제의로 국민당 대표 마이클 맨리(Michael Manley)와 에드워드 시가(Edward Seaga)가 무대 위에서 악수를 나눈다.
1981년 사망 이후에도 영향력을 지속했다. 1992년 영국 싱글 차트 5위에 오른 'Iron lion Zion'과 더불어 각종 데모와 미발표곡들이 여러 버전의 박스 세트로 발매되었다. 각종 미디어는 문화와 역사에 족적을 남긴 대중음악 아이콘으로 끊임없이 말리를 소환했으며 보노와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사회적인 뮤지션들도 그에게 헌사를 보냈다. 그의 두 아들 지기 말리와 데이먼 말리도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손자인 와이지 말리(YG Marley)도 데뷔곡 'Praise Jah in the moonlight'를 빌보드 싱글 차트 34위에 올리며 '말리 가(家)'의 레게 계보를 잇고 있다.
One love / The Wailing Wailers(1965)
“자메이카의 모타운”이란 별칭을 가진 유명 녹음실 스튜디오 원(Studio One)에서 발매한 1965년 음반 < The Wailing Wailers >가 전설의 시작이었다. 앨범 이미지 속 말리와 버니 웨일러, 피터 토시의 파릇파릇한 모습처럼 어수룩하지만 총기 넘치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당시만해도 레게로 꽃 피우기 전 스카의 특질이 주를 이뤘다. 1950년대부터 성행한 스카는 멘토(Mento)와 칼립소(Calyso)같은 캐리비언 뮤직에 영향 받았고 워킹베이스와 오프비트로 독특한 리듬감을 주조했다.
많은 데뷔작이 그렇듯 버트 바카락-할 데이비드 콤비의 명작 'What's new pussycat?'과 윌리엄 벨의 스택스 소울 'When the well runs dry'의 리메이크가 실렸지만, 1960년대 자메이카의 거리 문화를 다룬 'Rude boy'와 당대 최고의 스카 밴드 스카탈라이츠(The Skatalites)와 합작한 'Simmer down' 등 자작곡도 수준 높다. 말리가 쓴 록스테디(1960년대 중후반 짧게 유행했던 레게와 유사한 음악 장르) 넘버 'One love'는 가장 간명하고 확고한 메시지로 영화 < 밥 말리: 원 러브 >까지 계승되었다. 커티스 메이필드의 명곡 'People get ready'를 첨부한 버전이 1977년 명반 < Exodus >에 수록되었지만 2007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건 모든 역사의 시작점인 1965년 레코딩이었다.
Soul rebel / Soul Rebels(1970)
생경한 음반이나 자메이카의 위대한 두 음악 작가의 합작이란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 스튜디오 원에서 발매한 데뷔작 < The Wailing Wailers > 이후 5년 만에 나온 1970년 작 < Soul Rebels >는 영국 레이블 트로얀 레코즈(Trojan Reords)에서 발매되었다. 피터 토시와 버니 웨일러의 기량이 물올랐고 “덥(Dub)의 화신” 리 “스크래치” 페리의 프로듀싱이 천군만마였다. 레게에 근원을 둔 덥은 보컬 대신 에코와 리버브를 활용한 소리에 몰두하며 페리는 그러한 사운드 테크닉의 대가였다.
리 페리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만큼 대중에게 친숙한 밥 말리 음악과는 거리감 있다. 1973년 음반 < Catch A Fire>에도 수록된 피터 토시의 명작 '400 years'의 초기 버전과 제임스 브라운을 리메이크한 'My cup'에서 날 것에 가까운 원초성 사이키델릭한 정서를 내뿜는다. 칼튼 바렛의 드럼과 우지아 톰슨의 퍼커션이 도드라진 오프닝 트랙 'Soul rebel'은 커티스 메이필드와 마빈 게이 등 소울 음악에 심취했던 말리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Concrete Jungle / Catch A Fire(1973)
푸른색 지포 라이터 위에 무심하게 밴드와 음반 이름 적어놓은 1973년 작 < Catch A Fire >은 앨범 이미지만큼 음악도 묵직하다. 피터 토시의 냉소적 분위기가 살아 있는 '400 years'와 'Stop that train'은 “웨일러스=밥 말리” 등식을 거부했고 명곡 'I can see clearly now'의 주인공 조니 내시도 부른 'Stir it up'등 트랙 라인업이 알찬 덕에 다수의 전문가로부터 웨일러스 디스코그래피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메이카의 도시 트렌치 타운은 레게와 록스테디의 발생지이며 폭력으로 이어진 1970년대 과격 정치의 중심지였다. 트렌치 타운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가리키는 은어이자 삭막한 도시 전경을 콘크리트에 빗댄 'Concrete jungle'에서 웨일러스의 멤버들은 각자의 역량을 여과없이 분출했다. 레게 듀오 슬라이 앤 로비의 로비 셰익스피어와 버니 웨일러의 봉고가 주조한 주술적인 리듬과 잘게 부서지는 피터 토시의 리듬 기타가 다층적이다. 가히 밴드가 이룩한 절정의 순간이었다.
Get Up Stand Up / Burnin(1973)
경력 중간 점에 해당하는 1973년 작 < Burnin' >은 밥 말리 입문작으로 손색없다. 아일랜드 레코드를 설립한 자메이카계 영국인 프로듀서 크리스 블랙웰이 불어넣은 서구적 음악색과 피터 토시, 버니 웨일러 등 웨일러스 역군들의 화양연화 레게 팝 클래식이 여럿 탄생했다. < Burnin' >을 끝으로 죽마고우 피터 토시와 버니 웨일러는 솔로 활동으로 돌아섰고, 이 작품들도 레게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들이 많다. 레게 팝의 절대강자 유비포티가 커버한 'Small axe'와 에릭 클랩튼의 1974년 리메이크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수확한 'I shot the sheriff'는 웨일러스가 타 아티스트의 영감 원천이었음을 입증했다. 카리브 제도의 국가 아이티의 가난과 낙후에서 비롯한 'Get up, stand up'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궁극적 의지가 드러났다. 명징한 메시지와 강력한 후렴구로 전 세계 인구를 한곳에 결집한 이 명곡은 런던의 리시움(Lyceum) 극장에서 펼친 1975년 라이브 실황 < Live! > 에 10분짜리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1984년 히트곡 모음집 < Legend >도 이 노래를 빼놓지 않았다.
No woman no cry / Natty Dread(1974)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밥 말리 노래 아닐까? 로린 힐과 와이클리프 진의 그룹 푸지스와 나이지리아 스컬과 쿠시의 하하와 스컬 레게 듀오 스토니 스컹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부활한 'No woman, no cry'는 명료한 후렴구와 쾌활한 분위기로 레게 고전의 영속성을 획득했다. 성경 구절과 자메이카 민담으로부터 얻은 명곡 'So Jah seh'과 “말리식 사랑 문법”을 극대화한 'Lively yourself'가 수록된 1975년 작 < Natty Dread >를 더욱 빛내주었다.
트리비아(각종 지엽적 정보)가 많은 곡이다. 문법적으로 헛갈리는 곡 제목은 자메이카 고유 언어에 의거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가 적합하다. 말리의 대표작임에도 작곡 크레딧엔 죽마고우였던 뮤지션 빈센트 포드(Vincent Ford)가 명기되어 있다. 인도양 섬나라 모리셔스 출신 음악가 장 루셀(Jean Rousell)의 해먼드 오르간이 주도적인 원래 버전과 1975년 라이브 앨범 < Live! >에 실리 10분 러닝타임 라이브 실황은 각자의 방식으로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의 낙관주의 경지를 이룩하고 있다. 3년 전 자메이칸의 생을 다룬 단편영화 형식의 뮤직비디오가 완성되었다.
Positive vibration / Rastaman Vibration(1976)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유일한 탑10 음반이 된 1976년 작 < Rastaman Vibration >는 특기 요소가 많다. 'No woman, no cry'의 실질적 창작자인 레게 작곡가 빈센트 포드(Vincent Ford)와 < 밥 말리: 원 러브 > 서사의 중심축이자 밥 말리의 부인이었던 리타 말리의 곡을 다수 담았다. 각기 드럼과 베이스 기타를 담당했던 칼튼 바렛, 애스턴 바렛의 작곡 지분도 발견될 만큼 당시 멤버들의 역량이 돋보인다.
닭 우는 소리의 도입부와 중남미 원시 악기 귀로(Guiro)로 개성적인 사운를 구축한 'Crazy baldhead'와 1960년대 스카 밴드 스카탈라이츠에서 활동했던 색소포니스트 토미 맥쿡(Tommy McCook)'의 연주가 빛나는 'Roots, rock, reggae' 같은 특징적인 곡들이 많다. "당신이 만날 화내며 다툰다면 악마에게 기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If you get down and you quarrel everyday, You're saying prayers to the devils, I say)란 구절로 평화주의를 내세운 후 'Jah love, Jah love (protect us)'의 반복으로 셀라시에를 향해 경배했다. 긍정과 낙관을 노래한 'Positive vibration'은 자메이카 혼란기에 더욱 빛났다.
Exodus / Exodus(1977)
< 밥 말리: 원 러브 >에 'Exodus'의 창작 비화가 묘사된다. 폴 뉴먼 주연의 1960년 영화 < 영광의 탈출 >에 흐른 어네스트 골드의 'Exodus main theme'을 들은 말리와 동료들은 구약성경 속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하는 “출애굽기” 테마에서 'Exodus'를 착안했다. We know where we're going / we know where we're from / we're leaving babylon의 직설적인 가사는 라스타파리안의 이상향 에티오피아를 가리켰고 펑크와 레게 디스코의 강력 결합 덕에 7분여의 러닝타임이 밀도 높다.
LP A면의 'Exodus'의 위력이 B면 내내 이어질 만큼 1977년 작 < Exodus >는 레게 뮤직의 마스터피스로 불린다. 느긋한 흥겨움의 'Jammin'과 “Every Little Thing is Gonna Be Alright”이란 명가사를 보유한 'Three little birds', 영화명에도 쓰인 원 러브와 커티스 메이필드 명곡 'People get ready'를 합친 'One love/people get ready'까지 순도 높다. 개별 곡의 마력과 전체적인 완성도가 어우러진 < Exodus >는 빌보드 음반 차트 20위, 영국 음반 차트 8위의 상업적 성과도 챙겼다.
Is this love / Kaya(1978)
전작들 수준의 파급력은 아니지만 1978년 열번째 정규앨범 < Kaya >도 준수한 완성도를 갖췄다. 각종 건반 소리가 통통 튀는 'Kaya'와 명곡 'Crazy badhead' 이후 다시금 중남미 토속 악기 귀로의 매력을 드러낸 'Satisfy my soul' 로 흡인력을 담보했고 1971년 < Soul Revolution Part 2 >에 수록된 이후 몇 차례 리바이벌된 'Sun is shining'은 리 페리 특유의 몽롱한 덥 사운드를 함유했다. 1978년 4월 2일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의 국립경기장(The National Stadium)서 열린 원 러브 피스 콘서트(One Love Peace Concert) 열흘 전 발매된 < Kaya >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이어나갔다.
개성파 트랙 사이에서'Is this love'는 직관적 매력을 안겨줬다. 스티브 윈우드와도 협업했 주니오 마빈의 물 흐르듯 부드러운 기타 선율과 부드러이 격정적으로 사랑 노래하는 말리의 가창이 조화롭다. 영국 싱글 차트 8위로 대중성도 확보한 이 곡에 캐나다 로커 팻 트레버스와 'Put your records on'의 주인공 코린 베일리 레 등 많은 후배 뮤지션이 리메이크로 화답했다. 'Is this love'의 뮤직비디오엔 최정상급 슈퍼 모델 나오미 캠벨의 어린 시절이 담겨 화제가 되었다.
Zimbabwe / Survival(1979)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의 1979년 작 < Survival >은 영국 앨범 차트 20위의 준수한 성적에도 싱글 히트곡의 부재로 언급 빈도가 낮다. “생존”이란 음반 명과 다양한 국기를 담은 앨범 이미지, 직관적이고 목적성이 또렷한 트랙 명은 사회운동가로서의 입지를 한 단계 더 높여주었다. 가난과 불평등을 지적한 'So much trouble in the world'와 아프리카의 단합을 역설한 'Africa unite' 등 촉구의 노래로 가득 차 있다.
남아프리카 내륙국 짐바브웨의 국가명을 그대로 가져온 'Zimbabwe'는 1965년부터 1979년 실재했던 남아프리카의 국가 로디지아의 투사(鬪士)들을 다뤘다. 19세기 영국 정치인 세실 로즈(Cecil Rhodes)에게서 이름을 따올 만큼 영국인들의 입김이 거셌던 영토에서 아프리카 흑인은 플랜테이션의 노예로 작동할 뿐이었다. 말리가 1980년 짐바브웨의 명칭으로 독립한 후 독립기념일에서 불러 더 의미 깊었던 'Zimbabwe'는 “Right(권리)”란 단어가 스물일곱 번 등장할 만큼 불합리와 탄압을 비판하고 봉기를 강조했다.
Could you be loved / Uprising(1980)
레게 뮤지션의 상징과도 같은 헤어스타일 드레드록스를 길게 늘어뜨린 채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말리의 모습은 “봉기”란 뜻의 Uprising 의 붉은 활자와 어울렸다. 1980년 작 < Uprising >은 마지막 정규 앨범임에도 쇠락의 기미 없이 강력한 곡들을 배출했다. 다시금 말리와 크리스 블랙웰이 공동 프로듀서로 나선 < Uprising >은 영국 앨범 차트 6위와 미국 빌보드 탑 소울 엘피 차트(Top Soul LP) 41위를 수확했다.
백미는 앨범 후반부에 있다. 직관적 제목으로 야훼를 향한 사랑 고백한 'Forever loving Jah' 저울질 시작된다. 흑인 민족주의자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의 1937년 연설에 영향받은 'Redemption song'은 “영성” 측면에서 최대치에 해당하는 어쿠스틱 포크다. 레게 특유의 흥겨움은 덜하나 그 자리에 계몽과 예언, 등의 가치를 담뿍 담았다. 도입부 기타부터 클라비너 호넷과 브라질 마찰 드럼 쿠이카까지 리듬 폭포수를 구현한 디스코 팝 'Could you be loved'는 대중성 측면의 극대치다. 소리의 직관성을 따른다는 서두 기준에 입각해 힘겨운 저울질 끝에 'Could you be loved'를 택했다.
Redemption Song / Uprising(1980)
유일하게 한 앨범에서 두 번째 곡을 택했다. “구원의 노래”란 영적인 힘을 지닌 'Redemption song'은 자메이카의 민족주의자 마르커스 가비(Marcus Garvey)의 1937년 연설 “The Work That Has Been Done”에서 착안했다. 그가 촉구했던 흑인들의 아프리카 귀환은 라스타파리 교리와 연결되었고 노예 정신에서 해방하라, 오직 우리만이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가사가 여기서 태어났다.
일반적으로 짐작하는 레게와 달리 포크에 가까운 담담한 곡조는 영적 분위기와 더불어 말리의 메시지를 극대화하고 말리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간결하나 힘 있다. 강력한 의미를 지닌 명곡인 만큼 많은 뮤지션이 커버했다. 줄곧 리메이크로 빛을 봤던 맨프레드 맨스 어스 밴드는 1982년 음반 < Somewhere in Afrika >에 전자음악과 프로그레시브 록이 결합한 형태의 버전을 수록했고 'The load out / stay'의 주인공 잭슨 브라운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곡의 의미를 재차 부각했다. 말리 이후 대중음악계의 가장 활발한 사회운동가인 유투의 프론트퍼슨 보노도 'Redemption song'의 가치를 재차 강조했다.
Buffalo soldier / Confrontation(1983)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의 마지막 정규 음반 < Confrontation >은 말리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난 1983년에 나왔다. 사후 음반이다 보니 < Uprising>까지의 전작들과 작업 과정이 달랐고 결정적으로 성공의 일등 공신 크리스 블랙웰 대신 자메이카 출신 제작자 에롤 브라운(Errol Brown)의 지휘봉을 잡았다. 데모와 미발표 음원을 갈무리한 모음집 성격이다 보니 완성도는 덜했으나
킹 스포티(King Sporty)란 별명을 가진 자메이카의 레게 뮤지션 노엘 조지 윌리엄스와 말리가 공동 작곡한 'Buffalo Soldier'가 의 하이라이트다. 남북전쟁에 투입된 이후 또다시 아메리카 원주민과 싸워야 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병사들의 아이러니를 담은 'Buffalo soldier'는 강요된 싸움의 폐해를 지적하고 고발했다. 나긋나긋 넘실대는 리듬에 달라붙은 사회 고발적 메시지는 역사의 역설에 이은 2차 역설을 이뤘고 “음악가 이상의 사회운동가”임을 다시금 각인했다.
런던 소재의 레코드 전문 주간 뉴스레터 더 바이닐 팩토리(The Vinyl Factory)에서 다룬 < 14인 예술가의 인생을 바꾼 밥 말리 음반(Bob Marley Changed My Life: 14 artists pick their favourite Bob Marley records of all time) > 목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조금 덜 익숙하나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1.슬라이 앤 로비
Simmer down(1964)
2.이모탈 테크닉(Immortal Technique)
Judge not!(1962)
3.커티스 린치(Curtis Lynch)
Satisfy my soul(1978)
4.행크 쇼크리(Hank Shocklee)
Crazy baldhead(1976)
5.비비언 골드먼(Vivien Goldman)
Survival(1979)
6.롱탐(Wrong Tom)
Kaya(1978)
7.자라 맥팔레인(Zara McFarlane)
Catch a fire(1973)
8.카운트 스카이라킨(Count Skylarkin)
I'm still waiting(1965)
9.알렉스 피터슨(Alex Peterson)
Three little birds(1977)
10. 롭 엘리스(Rob Ellis)
Guiltiness(1977)
11.아드리안 셔우드(Adrian Sherwood)
Talkin blues(1974)
12. 팀 버지스(Tim Burgees)
Johnny was(1976)
13. 텐더로니우스(Tenderlonious)
Rainbow country(1983)
14. 콩고 나티(Congo Natty)
밥 말리의 모든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