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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홀한 청각적 체험, 슬로우다이브(Slowdive) 내한 공연
      • DATE : 2024/03   |   HIT : 1159
      • by 이승원

      • 슈게이징은 흔히 대중과 가장 멀어져 있는 장르 중 하나로 여겨졌다. 비타협적이고 불친절한 소음, 관객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자세는 대중과의 접점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장르의 불씨는 탄생과 함께 점점 꺼져만 갔다. K팝을 필두로 한 국내 대중음악 신이 두터운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이 그랬다. 마니아는커녕 향유하는 인구조차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슬로우다이브의 내한공연이 절찬리에 성료되었다는 사실은 과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음악의 현재를 호령하는 팝 스타도, 국내 유명 아티스트도 아닌 1990년대 슈게이징의 개척자가 지금 2024년에 와서 2,000여 석의 공연장을 단숨에 매진시키다니 말이다.

        뜨거웠던 예매 행렬만큼 현지의 열기도 뜨거웠다. 꽤 널찍한 공연장 내부는 기대 이상으로 북적댔고 객석을 가득 메운 인파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필자 본인은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공연 시작 한참 전인 3~4시간 전부터 공연장 앞에 대기 줄이 형성되었다고 하니 조금 놀랍게도 느껴졌다.

        당일 공연에 이토록 큰 관심이 모인 이유가 비단 슬로우다이브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내 슈게이징 흐름을 이끈 익명의 1인 밴드 파란노을이 공연의 오프닝을 장식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많은 인디 음악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으로 국내외 마니아층의 열광적 지지를 얻어낸 그이기도 했거니와, 그 신상이 일종의 비밀에 부쳐져 있는 신비주의 이미지 때문에도 더더욱 그랬다.


        이러한 관심과 궁금증을 유발하며 무대에 오른 파란노을은 유독 수줍은 듯한 모습이었다. 환호성의 크기가 유독 커서일까, 조금 경직되었나 싶은 인상도 들었다. 그러한 걱정도 잠시, 아시안 글로우, 브로큰티스 등 신을 이끄는 동료들과 합을 맞춘 파란노을은 '우리는 밤이 되면 빛난다', '아날로그 센티멘탈리즘' 등 그의 대표곡은 물론 구성 면에서 신선했던 'Imagination'까지 연신 특유의 아슬아슬한 보컬로 내뱉으며 관객과 맞닿았다.

        오프닝 무대의 마지막은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꾸며졌다. 발표된 적도, 발표될 예정도 없는, 오로지 그날 오프닝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였다. 조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연주 전 슬로우다이브를 상상하며 만들었지만 쓰다 보니 그저 인디 록이 되어버렸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 말 그대로 곡은 슬로우다이브의 향취가 나면서도 또 완전히 비슷하거나 하지 않은 색채를 냈다. 장르의 신화적 인물에 대한 존경과 관심이 멋지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파란노을과 친구들이 무대를 내려가고, 30분 가량의 무대 교체 시간을 가진 후 슬로우다이브가 무대에 올랐다. 투어 앨범 < Everything Is Alive >의 첫 트랙이자 베스트 트랙 중 하나인 'Shanty'와 함께 연주를 시작한 슬로우다이브는 크라프트베르크를 연상시키는 음산한 전자음과 이를 그대로 비디오로 옮겨 놓은 듯한 디지털 파형으로 순식간에 객석을 압도했다.

        이러한 무대 영상과 사운드의 조화가 가장 눈에 띄는 순간은 단연 'Catch the Breeze'에서였다. 곡 후반 특유의 흡인력 있는 진행과 연주는 마치 블랙홀처럼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형상을 그린 무대 비주얼과 함께 격이 다른 몰입감을 선사했다.


        파란노을의 무대도 물론 아주 훌륭했지만, 곡 사이사이 슬로우다이브의 연주가 잠시 쉬는 동안 곳곳에서는 격이 다르다는 식의 감탄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였다. 장장 30년에 달하는 밴드의 내공은 실로 엄청났다. 연주 내내 노이즈의 색채와 두께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가 하면, 이내 소리를 찬란하게 터뜨리며 온 관객을 환상의 영역으로 인도했다. 큰 음량에도 시끄럽다는 인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부드럽고 감성적이라는 인상까지 들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공연 말미에 찾아왔다. < Everything Is Alive >의 중심 트랙인 'Kisses', 슈게이징/드림 팝 장르를 상징하는 명곡 'Alison', 'When the sun hits'로 이어지는 막판의 행렬은 모든 관객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특히 'When the sun hits'에서의 레이첼 고스웰은 마치 시체들을 되살려 조종하는 영험한 주술사 같은 모습이었다.

        마지막 곡 '40 days'까지 모든 본 공연이 끝나고, 유독 길게 느껴졌던 앙코르 요청 끝에 다시 등장한 슬로우다이브는 이후 시간을 여운을 선사하는 데 집중했다. 서정적인 인트로의 'Sugar for the hill'로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이후 더욱 잔잔한 인상의 'Dagger'로 더욱 부드럽게 밀려오며 여린 감성을 자극했다. 마무리를 장식한 시드 바렛의 'Golden hair' 또한 귀가 아닌 폐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렵지 않게 사용되는 '체험하는 예술', 그 느낌을 적극 실감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공연 중은 물론 공연 후에도 어딘가 다른 세계에 다녀온 듯한 몽롱한 감각이 내내 뇌리를 지배했다. 새로 활기를 찾는 슈게이징의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생각 한 편에 자리잡고 있던 의구심, 그 걱정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 2024/03 이승원(ibgalatea1163@gmail.com)
      • 앨범 리뷰
      • Slowdive 슬로우다이브 박수진 2017 4114
      • 싱글 리뷰
      • Sugar for the pill 슬로우다이브 정민재 2017 1762
      • 아티클
      • 황홀한 청각적 체험, 슬로우다이브(Slowdive) 내한 공연 슬로우다이브 이승원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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