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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여러 음률에 둘러싸여 자라난다. 또 음악 감상을 끔찍이 싫어하는 이가 아닌 이상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하여 많은 곡들을 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음악을 좋아한다거나 즐긴다고 말하기 어렵다. 단순히 귀에 와닿는 소리를 그대로 들으며 살아가는 것과 스스로 인터넷, 라디오, 혹은 음반사를 뒤지며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그간 내 뇌리에 또렷이 박혀 나를 음악에 열광하게끔 만든 곡에는 무엇이 있는지 나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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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Epik High) 'Supreme 100'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사람라면 과거 케이블 음악채널에서 정규 방송이 없을 때마다 틀어 주던 뮤직비디오 모음 프로그램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와 에픽하이 그리고 힙합의 만남도 그곳에서 시작됐다. 정확히 어떤 곡이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큰 충격을 줬던 비주얼이었으니 아마 'Fan'이 아니었을까?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자극을 받은 나는 그 길로 컴퓨터를 켜서 에픽하이의 음악을 닥치는 대로 검색했고 에픽하이 정규 6집 < [e] > CD를 부모님께 부탁해 구입하기까지 했다. 'Supreme 100'는 바로 그 앨범의 수록곡이자 타블로의 솔로 트랙이다.
숫자 100은 100마디를 뜻한다. 제목에 맞게 타블로는 극도로 간소화된 비트 위에서 약 5분의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랩을 뱉는다. '액자를 벽에 걸 때처럼 그럼 못써', '가득 찬 무덤처럼 나 관둘 수가 없어', 'I'll ba rock (Barack) the show, all by my(Obama)self'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타블로식 펀치라인이 백미다. 부끄럽지만 당시 이 곡에 매료되어 가사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열심히 따라 부른 끝에 전부를 외워 학교에서 랩을 하고 다녔던 추억이 있다. 에픽하이가 보여준 가장 순수한 힙합 넘버이자 나를 힙합의 매력에 빠지게 한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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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Bermuda (triangle)'
서태지라는 이름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음악은 어떨까?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성기 및 솔로 시절의 서태지 신드롬을 겪어보지 않은 젊은 층이라면 상당히 생소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여느 때처럼 TV를 보다가 우연히 마주친 프로그램 하나가 나를 뒤흔들었다. 바로 서태지 9집 < Quiet Night > 컴백 콘서트 생중계였다. 단순히 부모님 세대에서 유행했던 가수로만 알고 있던 그가 무대에서 여전히 열정적인 모습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보고 자연스레 그의 팬이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네 장의 앨범과 솔로 데뷔 후 5집부터 9집까지 모두를 좋아하지만 가장 많이 들은 음반은 역시 8집 < Seotaiji 8th Atomos >에 수록된 'Bermuda (triangle)'이다. 수많은 메타포로 가득한 잔혹 동화 같은 가사 또한 사춘기를 지나는 내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당시 블로그 닉네임을 곡에서 따와 '불현듯한질투'라고 지었다. 여러가지로 나의 10대 중반을 상징하는 트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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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83 'Midnight city'
음악을 통해 우주를 유영하는 경험을 가능케 하는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으로 국내 아티스트 위주로만 듣던 나를 넓은 세계로 이끈 일등 공신이다. 당시 한 달 용돈으로 삼만 원을 받던 나는 'Midnight city'를 듣자마자 바로 곡이 수록된 < Hurry Up, We're Dreaming > 앨범에 빠져들었고 다음날 15,000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CD를 구입했다. M83이 펼쳐내는 풍부하고 드넓은 사운드스케이프는 어린 나에게 격렬한 파토스를 자아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 마음속 차트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또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노래다.
M83의 히트 싱글이 있긴 하지만 그의 음악 세계를 잘 설명할 수 있는 트랙은 'Midnight city'라고 생각한다. 두 명으로 시작한 슈게이징 그룹이 안토니 곤잘레즈의 원맨밴드로 재탄생되기까지 켜켜이 쌓인 세월과 스타일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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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치(Avicii) 'Wake me up'
2018년 4월 20일, 아비치가 세상을 떠났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그 소식을 듣고는 한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아비치의 < True > CD가 놓인 곳으로 움직였다. 몇 년 전 꼬깃꼬깃한 돈을 모아서 구입해서 열심히 들었지만 어느새 방치되어 먼지만 쌓인 음반이다. 단순하고 촌스러운 EDM 따위는 이제 질렸다고 말하며 '있어 보이는' 음악을 듣는다며 내팽개쳤던 음반이었다.
'Wake me up'의 첫인상은 혁신이었다. 통기타를 열심히 배우면서도 일렉트로닉 음악을 즐겨 듣던 나에게 이 두 요소의 결합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인공적인 전자음 대신 시원한 스트럼으로 시작하는 인트로부터 컨트리를 차용해 '뽕끼' 가득한 드랍까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인생 곡을 드디어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어 DJ 컨트롤러를 사고 처음 믹싱한 곡도 'Wake me up'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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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 'Yeah Right'
외국 힙합을 처음 듣기 시작한 후로 정말 많은 충격을 겪었다. 카니예 웨스트의 'Runaway', 켄드릭 라마의 'Alright'처럼 상징적인 곡들도 있지만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곡은 'Yeah right'이다. 발매 당시 내가 빠져 있던 해외 힙합과 전자음악을 하나로 잇는 경험을 제공한 이 곡을 1년 내내 귀에 달고 살았다.
플룸과 소피가 주조해 낸 얼터너티브한 비트 위로 빈스 스테이플스는 더없이 여유롭게 랩을 내뱉는다. 'Diamonds on your neck, is them pretend?' 같은 가사에 나타나는 그의 냉소적인 태도는 메인스트림 래퍼들에게 보내는 비웃음이다. 브릿지로 분위기가 전환되는 구성 속에서 등장하는 켄드릭 라마는 스스로를 시대정신이라 칭하며 절정에 달한 랩 스킬을 뽐낸다. 완벽에 가까운 뱅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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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랜치스(The Avalanches) 'Since I left you'
신나는 댄스 트랙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건 불가능한 체험이지만 나는 이 노래를 듣고 그 특이한 경험을 했다. 애벌랜치스는 그동안 록과 블루스부터 클래식까지 아우르는 수많은 샘플을 다시 조합해서 새로운 곡을 탄생시켰다. 'Since I left you' 역시 무려 17개의 노래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은 결과물이다.
당연하게도 여기에 포함된 샘플은 나에겐 먼 과거의 노래들이지만 켜켜이 쌓인 소리에 집중하면 이상하게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시대의 향수에 빠진다. 이것은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삶을 의미하는 듯한, 작은 웃음과 깨달음을 주는 포인트다. 갱도 속에 갇힌 두 광부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뮤직비디오도 빼놓을 수 없다. 첫 부분의 'Welcome to paradise'라는 노랫말처럼 애벌랜치스는 나를 한 시간 동안 샘플링으로 점철된 댄스음악의 천국으로 인도했다.
이미지 편집 : 김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