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최전선 K팝 전장에 록이라는 낡은 신호가 포착되었다. 저지 클럽과 드럼 앤 베이스 등 전자음악이 작년 대세를 평정한 가운데 음악계 전통 보수파가 일으킨 비밀스러운 정권 탈환 시도일까, 혹은 노쇠한 장르가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일까. 세계적인 위치에 올라선 K팝이 과거를 가리키고 있으니, 젊음을 건너 영 제너레이션을 대변하는 K팝과 록의 동거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게 당연하다. 전통적인 장르보다는 댄스, 전자음악, 그리고 힙합과 유독 친밀했기 때문이다.
이 어색한 현상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자. 그룹의 특수성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 아래 록이 기능한 사례가 이미 존재했다. 밴드형 아이돌 이미지를 형성한 씨엔블루(CNBLUE)와 에프티 아일랜드(FT Island), 초창기의 에이오에이(AOA)가 있고, 메탈 콘셉트를 꾸준히 유지하는 드림캐쳐나 줄곧 모던 록에 기반한 데이식스는 사운드에서 개성을 찾았다. 특정 팀의 개성을 부여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으니, 주류로 바라보기는 어려웠다.
반면 요즈음 록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음악적 트렌드다. 귀를 위압하는 신시사이저, 브레이크비트가 아니라 선명한 기타 리프와 박자를 이리저리 쪼개는 드럼, 일렉트릭 기타 소리를 거칠게 마감 처리한 디스토션(distortion) 사운드로 무장한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뉴진스의 'Ditto'가 흥행한 이후 모두가 저지 클럽에 몰입한 것처럼 한국 음악 시장을 향한 록의 난입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대형 기획사부터 중소 규모의 K팝까지, 록이 일으키는 돌풍은 이미 거세다.
K팝 록의 전초전, 팝 펑크 리바이벌(Pop Punk Revival)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몇 년간 거세게 휘몰아쳤던 전초전, 팝 펑크 리바이벌을 먼저 짚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펑크(Punk)의 틀 위에 대중적인 멜로디로 맛을 낸 이 장르가 약 20년 만에 부활했다. 신세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당돌한 팝 펑크 트랙 'Good 4 u'로 미국을 평정했고, 전성기의 선봉장 에이브릴 라빈도 돌아왔다. 때마침 그린데이와 블링크-182(Blink-182), 섬 41(Sum 41)도 차례로 복귀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틱톡 등 숏폼 SNS의 발달과 맞물려 사춘기 청소년들의 혼란을 저격했고, 큰바람을 일으킨 덕분이었다.
K팝 업계는 Y2K, 하이틴 등 사회문화적인 복고 유행에 청각적으로 팝 펑크를 대동해 낙수효과를 톡톡히 봤다. 최예나(YENA)와 (여자)아이들의 행보는 'K팝 펑크'가 기능한 대표적인 사례. 최예나는 본인의 긍정적인 정체성에 잘 어우러지는 'Smiley'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같은 해 아이들의 'Tomboy'는 반항적인 선율로 팝 펑크를 해석했다. 발랄하거나 혹은 발칙하거나, 장르 특유의 매력을 각 아티스트의 개성에 잘 녹여낸 발 빠른 현지화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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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음악 속 다변화, 록의 본격적인 침투
최근에는 록 장르의 다양화로 더 나아간다. 앞선 (여자)아이들은 2023년 < I Feel >의 'Allergy'로 팝 펑크와 틴 록(Teen Rock)의 톡쏘는 맛을 선보였다. 얼마 전 발매한 정규 2집 < 2 >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에서는 밴드 사운드를 조금 더 부드럽게 가다듬어 약간의 우회도 감행했다. 지난 1월 최예나 역시 자신만의 팝 펑크를 보강한 < Good morning >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명랑한 이미지 활용에만 그치지 않고, 'Good morning'과 'Damn U' 모두 리듬 기타를 전면에 내세우며 소리 강화에 성공했고, 짧은 기타 솔로와 변주 구간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미운 오리 새끼'까지 록 선율을 다양하게 갈고닦았다.
기타의 격렬한 스트로크는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까지 미친다. 지난 1월 < Born To Be >로 복귀한 있지(ITZY)가 대표적이다. 음압 높은 전자음악 타이틀을 유지하면서도 멤버 개인 곡에는 록을 향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금속성 기타 리프와 샤우팅 보컬이 조합된 예지의 'Crown on my head', 마찬가지로 류진의 'Run away' 모두 하드 록, 팝 메탈 장르와 교집합이 뚜렷하다. 아래로 내리꽂는 백킹 기타가 이끌어가는 곡은 지금까지 있지가 고수한 스타일과 다른 파격이며 그룹이 지향하는 당당한 인물상에 잘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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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도 서태지의 '시대유감'을 리메이크하며 그 개성에 걸맞는 록 소화력을 선보였다. 도회적이고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발산하는 얼터너티브 록인 만큼 금속성 에스파에 적절히 어우러진다. 에스파는 기존의 하이퍼 팝(Hyper pop) 사운드와 앙칼진 랩을 가미해 원곡을 해석했는데, '시대유감'의 훼손하지 않으며 서태지의 리메이크 수락에 화답했다. 반항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춘 20세기와 21세기의 두 아티스트가 록이라는 합의점에서 만난 순간이다.
여러 그룹이 모여든 하이브 진영에서도 같은 흐름이 포착된다. 데뷔부터 팝 펑크와 록을 청량하게 해석해 온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는 < 이름의 장: Freefall >에서 날카로운 록 넘버 'Growing pain'으로 기세를 잡았다. 하늘색에서 진청색으로 선명한 채도 변화를 통해 그룹의 스펙트럼을 넓힌 모양새다. 라틴과 전자음악을 주 무기로 삼는 르세라핌 역시 < Antifragile >의 수록곡 'No celestial'로 한차례 펑크를 선보인 데 이어 2024년 2월 컴백 트레일러 영상에는 더 묵직한 기타 소리를 동원하며 시류에 함께 한다.
대형 엔터테인먼트 영역 밖 K팝에서도 록은 다채롭다. 프림로즈의 데뷔 앨범 < Red Moon > 수록곡 'Play'는 기타 리프로 시작해 간결한 코드 진행이 돋보이는 곡으로, 산뜻한 보컬이 어우러진다. 그런가 하면 어린 싱어송라이터 규빈의 'Really like you'도 연령대에 어울리는 음악의 매력을 뽐낸다. 틴 팝과 팝 록 스타일을 재현하며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조나스 브라더스 등 디즈니 키즈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힙합에서 팝으로 유려하게 발돋움한 빅 나티의 'Vancouver 2'나 애쉬 아일랜드의 '작별인사' 등도 힙합의 꼬리표가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분명한 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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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의 발빠른 현지화와 록의 생존전략
왜 다시 한국에 록 바람이 부는 걸까,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먼저 세계 진출의 활로가 뚫리고 다변화가 도래한 K팝은 영역 확장을 위해 서양과 시차를 좁혀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해외 사례를 신속하게 벤치마킹하고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단, 한국 시장의 흐름에 맞고 통할 요소만.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K팝의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도 '여성' 아티스트가 'Z세대'에 소구력을 행사한다는 점이 들어맞기 때문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록과 합작한 이모(Emo) 랩으로 차트 성공을 거둔 포스트 말론이 음원 경쟁력을 갖춘 한국 래퍼의 롤 모델이 된 것 역시 영리한 현지화의 결실이다.
물론 시장 맞춤형 전략이 아니더라도 록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비슷한 일렉트로니카와 힙합 음악들이 10년 넘게 득세하던 와중에 K팝도 새로운 피가 필요했고, 진부하다 느껴지다 못해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진 록은 신선한 수혈의 적임자다. 더군다나 최근 등장한 아이돌은 각자의 '진취적인 주체성'을 품고 있으니, 주제적으로도 록과 여러 공통점을 공유한다. 서정성보다 야수성이 주도권을 잡은 현시점에 강한 곡은 여전히 필요하고, 힙합과 댄스 음악은 이제 진부하니 반항과 저항의 상징이었던 록은 소리로 보나 지향으로 보나 안성맞춤이다. 수많은 록 하위 장르 중에서 대부분의 팀이 톡쏘는 펑크 계열을 주로 차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지.
더군다나 걸그룹이 실권을 쥔 현 K팝에 역사적으로 남성형 명사에 가까웠던 록이 색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겠다. 록 씬에서도 드문 여성 로커의 등장은 이 20세기의 명제를 정면으로 깨부수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진행 과정 자체를 팀의 세계관과 녹여내는 것이 타 장르보다는 꽤 구체적이며 신선하게 어우러진다. 블론디(Blondie)나 허트(Heart),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의 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당한 여성 로커의 상(像)에서 음악이나 콘셉트의 단서를 찾기가 어렵지 않은 덕분이다.
K-POP Rock도 Rock이다
물론 '록 복권(復權)파'의 입장에서 이 현상이 달가울지는 의문이다. 자기 주도적인 DIY(Do it yourself) 음악 펑크를 위시했으나 아티스트의 주도적 참여가 어려운 프로덕션 환경도 그렇고, 기타 솔로 등 록의 요소를 삽입하기에는 댄스 브레이크나 랩 등 부가 요소가 많은 K팝과의 융합에 이질감이 느껴진다. 사회적인 메시지나 주제를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점 등도 록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많은 이들이 이미 언급했듯이 K팝이 록의 매력적인 외모만을 본 따오고, 장르 자체를 도구화하고 대상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록이 K팝의 새로운 탈출구로 기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또 코로나 종식 후 록 페스티벌이 이전의 활기를 되찾고 있고 이승윤과 실리카겔을 중심으로 한 국내 록의 흐름 역시 심상치 않으니 이 현상의 발전을 통해 록 계와 교집합이 넓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단순히 '록을 차용한 아이돌 음악'과 '아이돌화된 록 밴드의 음악'를 넘어서 K팝 록의 저변 확대로 본다면 긍정적인 현상임은 분명하다. 수많은 장르가 차트 경쟁을 벌이는 지금, 록이 다시 권좌에 오를 수 있는 적기가 아닌가. 그저 귀를 열어두고 이 생경한 동거를 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