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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계의 명 엔지니어 임창덕이 인생 앨범으로 뽑았을 만큼 낯선사람들의 음악은 대한민국에서 나오기 힘든, 아니, 나올 수 없는 음악이었다. 1990년대에 이런 세련된 보컬 그룹이 나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 주역으로 우리는 이소라를 기억하지만, 그 중심에는 고찬용이 있었다. 지난 5월 문화도시 부평의 같은 시리즈로 인터뷰했던 빅마마의 신연아 마저도 낯선사람들의 1집의 훌륭한 음악에 놀라 충격과 좌절에 빠졌다고 말하며, 이를 자기 인생의 명반으로 남겼다.
긴 공백기로 많이 잊힌 사이에도 절대로 음악을 놓지 않았던 고찬용은 꾸준히 홀로서기를 준비했다. 그렇게 2012년 솔로 2집 < Look Back >까지 발매를 했음에도 2023년인 올 여름 신곡을 공개하며 여전히 건반에 믹싱까지 익히고 있다고 밝혔다. 타고난 보컬리스트인 그도 음악을 위해서라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고찬용이 말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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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찬용하면 '낯선사람들'과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먼저 떠오른다. 먼저 낯선사람들 결성은 정확히 언제인가.
1989년 인천대학교를 입학하던 해에 만들어졌다. 이소라는 1년 선배였고, 결성했던 당시에는 바로 음반을 만들어서 프로로 나가자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음악이 좋아서 재미 삼아 시작했다.
낯선사람들 전부 인천대 출신으로 꾸린 건가?
인천대 동아리 '포크라인'의 선후배 사이인데, 나중에 백명석 씨가 명지대에 다니다가 들어오게 됐다. 선배의 권유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결성한 것이 시작이었다.
팀명 '낯선사람들'은 무슨 의미인가?
제가 지은 것은 아니고요. (웃음) 친구가 지었는데 그때는 어려서 무슨 의민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갔던 것 같다. 팀 형님이 “처음 보는 모든 풍경이나, 사람들은 낯설지만 결국에는 까워진다”라고 주로 인터뷰했던 게 기억난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팀 결성보다 늦은 1990년 우승인데 왜 팀으로 나가지 않았나?
당시에는 그룹 참가가 불가능했다.
우승한 뒤에 프로로 전향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지.
가수에 대한 꿈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그 발판이 되었고, 서울음반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장님이 그룹 활동을 반대하셨지만, 연습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결국 허락하셨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예선에서 중간에 내려갔다고 들었다. 저렇게 노래를 잘하고, 기타를 잘 치는데 왜 내려가지라는 반응이었다고.
너무 긴장하기도 했고, 노래가 원하는 대로 안 나왔다. 2번인가를 다시 했는데 만족이 안 돼서 그냥 내려왔다. 그날 친구들하고 술을 엄청 먹었다. 그래도 다행히 본선 무대까지 올라갔는데 관계자분들이 오늘은 끝까지 부르라고 얘기하더라. (웃음)
어떻게 보면 프로 데뷔의 시발점이 된 이 대회가 고찬용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사실 유재하를 잘 몰랐고, 그냥 가요제가 있다고 해서 참가를 했다. 어릴 때는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나, 조용필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참 좋아했는데 이 곡을 유재하가 썼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그래도 대회 자체는 꿈을 이뤄준 중요한 무대이자 대회였다. 덕분에 많은 음악가분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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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배운 건가, 독학 한 건가?
독학했다. 그때는 배울 데도 없었고. 고등학교 때 친구가 해바라기를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주법도 배우고 연습하다가 대학교에 가서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좀 다양해졌다.
인천대 앞에 이주원 씨가 운영하던 비 카페(혼자 내리는 비, 여럿이서 내리는 비)에 자주 갔다. 음악인들이 많이 모이던 곳이었다. 김현철, 박선주, 신윤철도 거기서 보고, 영향을 받았다.
그럼 언제부터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가.
초등학생 때부터였는데 어머니가 조용필을 좋아하셔서 막연하게 그런 가수가 되고 싶었다. 팝송은 잘 안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용필, 이문세, 정수라 같은 가수를 좋아했다. 어릴 때는 한국 사람이 우리 음악 듣지, 뭐 그런 애국자 마인드였다. (웃음)
그런데 음악은 완전 팝, 재즈 이런 것들이다.
집에 엘비스 프레슬리, 아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같은 팝 앨범들은 꽤 있었다. 누나는 팝, 어머니는 가요를 좋아했다. 특히 어머님이 음악을 많이 들으셨는데, 조용필 광팬이셨다.
아무래도 음악 많이 듣고 연습하다 보면 공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기왕이면 잘하면 좋은데, 기타만 치고 앉아있으니 부모님도 완전 이해하기는 어려우셨을 거다.
낯선사람들 동명의 데뷔 앨범이자, 첫 트랙인 '낯선사람들'은 낯설면서도 참 새로웠다. 통기타 반주에 재즈 보컬을 얹은, 포크 스타일이면서 재즈 스타일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궁금하다.
일단 혼성 보컬 팀이었기 때문에 단조롭게 가고 싶지는 않았다. 맨하탄 트랜스퍼 팀도 접하면서 다양한 화성과 좋은 소리를 연구했다. 코드 진행 같은 건 사실 대학교 1학년 때 전혀 모르던 상태였는데, 비 카페에서 연주할 때 잡는 폼이 다들 달랐다. 저는 개방현 G 코드를 잡았지만, 다른 분들은 굉장히 단조롭게 잡았다. 그 이후에 궁금해서 책을 사고 공부해서 곡을 썼다.
재즈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우연히 샘 쿡 음악을 듣고는 반해버렸다. 당시에는 재즈가 스탠더드 팝 같은 이런 느낌이지 않았나. 그렇게 바로 레코드 가게로 가서 재즈 좀 달라고 했다. 여러 장 골라줬는데, 그때 알 제로 앨범도 받았던 것 같다. 집에서 딱 들었는데 너무 난해하고 무슨 음악인지 모르겠더라. 아마 대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낯선사람들 2집(두려운 행운)은 완전히 펑키(funky)한 스타일이다. 1996년이면 영미권에서도 에시드 재즈가 열풍일 때인데, 그 흐름을 알고 있었던 건가?
자미로콰이 같은 팀도 관심이 없었고, 그런 유행은 잘 몰랐다. 우선 1집에서는 직접 편곡을 한 게 거의 없었다. 김현철 씨나, 정원영 씨가 많이 도와줬는데, 2집에서는 스스로 편곡을 해보고 싶어서 여러 가지 실험적인 작업을 했다. 세션 분들도 워낙 훌륭하셨고, 임창덕 감독님이라고 굉장히 출중하신 분이 음향을 맡아주셨다. 소통도 잘 됐고.
2집에는 시티팝, 유로팝, 월드뮤직 같은 다양한 스타일이 녹아있다. 1집과 완전히 다른 음악을 선보였던 이유가 있나?
우선은 퓨전적인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식은 부족하고 욕심은 과하다 보니 무리도 하게 됐고, 후회하는 곡들도 많았다. 저에게는 실험적인 앨범이다.
실제로도 낯선사람들과 함께 많이 언급되는 맨하탄 트랜스퍼는 언제 알게 됐나?
낯선 사람들을 결성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나 알게 됐다. 그 전이나, 대회에서 우승했던 '거리풍경' 같은 경우에는 화성이 단조롭다. 이 팀을 듣고 나서 다채롭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 < 내 마음에 풍금 >에 '화장실 낙서'라는 스캣 곡으로 참여를 했다.
스캣 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웃음) 바비 맥퍼린, 알 자로, 모든 멤버가 스캣을 하는 맨하탄 트랜스퍼 등 다양한 팀을 참고했다. 이게 다 스킬인데 들으면서 배울 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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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혹은 인천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추억이 있나?
그때는 뭐 맨날 술이나 먹지. (웃음) 특히 부평은 완전 번화한 먹자골목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갔더니 완전 술집, 노래방으로 너무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옛날에는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는데.
인천에서 받은 음악적 영향이 있을까?
인천에서 많이 배웠다. 비 카페에 자주 들리던 음악인들과 교류하면서 영향을 받았다.
그럼 혹시 '거리풍경'도 인천이 배경인 건가?
그건 잘 모르겠다. (웃음) 그래도 인천이 배경일 확률이 높지 않을까? 맨날 술 먹고 놀러 다니던 거리였기 때문에.
'거리풍경'은 언제 만들었는지.
대학교 2학년 초반에 만든 곡이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염두에 두고 만든 노래는 아니다. 사실 친구와 강변가요제에 나간 적도 있다.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1996년 낯선사람들 2집부터 2006년 솔로 1집인 < After 10 Years Absence >까지 정확히 10년이 걸렸다. 긴 공백기 동안 어떻게 지냈나.
공황장애를 앓았다. 누나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이런 아픔과 슬픔을 의도적으로 담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는 있을 거다. 특히 '겨울이 오네'는 누나를 생각하면서 쓴 곡이다.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음악 선배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예전에는 아이돌 음악을 안 들었다. TV에서 나오면 채널을 돌릴 정도였는데 요즘은 가끔 찾아볼 때가 있다.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노래들을 너무 잘한다. K팝을 들어보면 정말 조기교육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싶다. 키워낸 음악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듬, 보컬 톤, 노래 방법 등 완벽할 정도로 잘한다. 이제는 딱히 안 좋게 볼 이유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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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 어떤 아티스트로 남고 싶은지.
음악 하는 사람들이 대중에 맞추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는 자기 분야를 발전시키면서 더 좋은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로 기억되고 싶다.
'고찬용'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이란?
계속해서 발전하고, 시도하려는 음악? 예를 들어 우리나라 재즈계에 젊은 친구 중에서 기본기만 갖고 있는 분들은 많다. 당연히 앞으로 더 나아지겠지만, 지속해서 성장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
진행 : 소승근, 장준환, 임동엽
정리 : 임동엽, 장준환
사진 : 임동엽, 장준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