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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42 구창모
      • DATE : 2023/10   |   HIT : 1770
      • by 백종권
      •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마흔 두 번째 주인공은 송골매의 프론트맨이었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 구창모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사도 꽤 페이지가 두껍게 쌓였다. 만일 그 수십 년의 이야기를 짧게 요약해 몇 명의 이름만 남겨놓아야 한다면 누구나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아티스트들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 속에서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가요의 기반을 다지고 세기에 남을 명곡을 탄생시킨 이름들,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희나리'의 주인공 송골매의 구창모 역시 이들 중 한 명이다.

        이미 거대한 한 획을 그었지만 단순히 지나간 역사가 아니었다. 송골매 결성 40주년 콘서트 < 열망 >을 무사히 마치고, 오는 10월 6일 TV 프로그램 < 오빠 시대 >를 통해 30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를 알린 구창모는 앞으로의 음악적 계획까지 조심스레 예고한다. 송골매, 그보다 전 밴드 블랙테트라의 간판으로서 40년의 긴 세월이 남겨놓은 이야기를 넉넉하고 유쾌한 톤으로 전했다. 거장의 열정이 온전히 퍼진 대화는 침이 마르도록 이어졌다.



        부평은 구창모에게 어떤 곳인가. 13년 동안 산 곳이라고 했는데.
        고향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 신트리(백마장) 쪽인데, 당시 우리 집 앞쪽에는 논밖에 없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신촌로(부평구)의 미군 기지촌을 중심으로 클럽이 많았다. 내 음악의 배경이 그곳에서 형성됐다.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비틀스의 이름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많은 국내 밴드가 클럽에서 그들을 따라 했고, 그 모습을 구경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촌지간이자 '아득히 먼 곳'을 노래한 이승재의 영향이 컸을까.
        그렇다. 어머니의 남동생이자 승재 형의 아버지인 외삼촌 댁이 꽤 부유했는데, 집에 마당이 있어서 승재 형이 그곳에서 자주 밴드 연습을 했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구경거리를 접할 수 있었다.

        처음 노래를 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하나.
        당시에는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동네 분들이 마당으로 멍석을 깔고 나왔다. 그러면 툇마루에 앉아있던 나를 불러 노래를 시켰다. 당시 집에 딱 하나 있던 라디오에서 박재홍의 '유정천리', 황정자의 '오동동 타령'을 기억해 불렀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나의 노래를 좋아했다.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도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승재 형의 영향으로 일찍이 통기타를 잡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생 때다. 그때는 대학에 가려면 예비고사를 치러야 했다. 나는 시험을 세 번 봤는데 처음 두 번은 낙방했다. 소위 삼수생이 된 건데, 그러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한창 젊은 사람들이 모이던 무교동으로 놀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막걸리를 마시고 통금 때문에 막차를 기다리다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오랜만에 근황 이야기를 나눴는데, 요새 뭐하냐고 묻더라. 마땅히 대답할 만한 것이 없어 얼버무렸다. 그때 비참했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잠을 이루지 못하며 밤새 인생을 돌아본 것 같다.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때의 일 덕분에 대학에 들어갔고 그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대학교 첫 강의를 마치고 강의실 밖을 나가자 고등학교 후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친구가 블랙테트라를 함께 창단한 홍대선이다.

        '구름과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그때만 해도 나는 작사 작곡을 하지 못했다. 블랙테트라를 막 창단했을 시기에 신입생으로 들어온 고상록이 자신이 음악을 만들었다면서 '구름과 나'를 가지고 온 것이다. 기존 선배들의 팁으로 편곡을 거쳐 곡이 탄생했는데 원곡도 훌륭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편곡이 좋았던 것 같다.


        송골매를 함께한 배철수의 첫인상은 어떻게 기억하는가.
        이미 활주로에서 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배철수는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부터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머리를 한 달이나 안 감았다고 그랬는데… (웃음) 기름지고 긴 머리의 비주얼로 기억에 남아있다.

        배철수가 구창모를 찾아올 당시 암자에 있었다고 했는데…
        당시 배철수는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TV 전파를 타 지구레코드의 섭외를 통해 활주로의 앨범을 냈고, 나는 블랙테트라로서 먼저 앨범을 냈지만 돈 한 푼 벌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막막한 상황에서 어쨌거나 블랙테트라는 학교 동아리였으니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배철수와 따로 밴드를 결성했다.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큰 결심을 했으나 한 조직을 이끌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재정 상황도 불안정했고 멤버들은 나날이 바뀌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생활에 지친 나는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소개를 받아 암자에 들어가 취업 공부를 하게 됐다.

        얼마 후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선후배 할 것 없이 나를 따라 공부하러 절에 들어왔다. 그러다 1979년 12월에 배철수가 다시 나를 찾아 절에 온 것이다. 1980년 1월에 내가 밴드 활동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한다. 그때는 내가 떠난 후 남은 멤버들이 4인조로 송골매로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던 시기였다.

        통신 수단이 지금과 같은 시기가 아니었는데, 극적인 재회였을 것 같다.
        내가 떠나고 다른 멤버들도 밴드를 떠나면서 배철수가 할 수 없이 남은 후배들과 고등학교 동창을 영입해 앨범을 냈는데 영 반응이 좋지 않았다. 어느 날 노사연을 만나 내가 설악산 절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모양이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누구냐 물어보니 익숙한 목소리가 대답했고, 그게 배철수였다. 함께 음악을 하자는 제안을 하러 온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다시 내가 합류하면서 송골매가 재탄생했다. 그렇게 2집을 발표하게 됐다.

        재결성 이후에 2집 발매까지 시간이 늦춰진 이유는 무엇인가.
        밴드로서 가장 큰 핸디캡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우리는 가장 먼저 돈이 필요했다. 아까도 무교동 이야기를 했지만, 당시 친한 선배가 종로3가 관철동에 '라스베가스'라는 디스코텍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형을 찾아가서 밴드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한 후에 일을 달라고 부탁했다. 덕분에 선수금 45만 원을 받고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당시에는 큰돈이었기 때문에 그 돈으로 악기도 사고 공연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사장이었던 선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부사장이 우리를 내몬 것이다. 록 음악을 구사했던 우리의 음악이 디스코텍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직장을 잃고 그 사이 음악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인원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송골매는 6인조로 개편하게 되었다. 후에는 댄스음악도 준비해서 다시 라스베가스로 찾아갔고 가게를 운영하던 선배가 우리를 아껴준 덕에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악기를 늘려가며 오디오 시스템까지 갖출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으로 2집이 발매된 것인지.
        당시부터 우리가 조금씩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배철수는 전국구 방송이었던 MBC에 출연했기 때문에 인지도를 조금씩 얻었는데, 마침 딕훼밀리 밴드로 활동하던 서성원이 사업적으로 눈이 밝았던 덕에 출연료를 무려 120만 원을 주고 우리를 스카우트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기존의 일하던 디스코텍과의 의리가 있었기 때문에 고민했지만, 사장이었던 선배에게 솔직히 이야기한 뒤에 결국 새로운 클럽과 계약을 했다. 그곳이 나중에는 '무겐 나이트클럽'가 된다. 당시 나의 우상이었던 사랑과 평화가 그곳에서 공연하고 있었고 그들을 보면서도 많이 배웠다. 하지만 곧이어 주인이 바뀌었고 펑크(funk)와 디스코 위주의 음악을 틀던 클럽이 카바레로 성격이 바뀌어 버렸다. 그러면서 우리도 신촌으로 거취를 옮겼다.

        약 1980년부터 2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다행히 여기저기를 오가며 계속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구할 수 있었고 그것이 많은 연습이 됐다. 이미 그때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편곡을 마친 상태였다.

        당시 어떤 음악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유라이어 힙(Uriah Heep), 딥 퍼플 등 록에 심취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사랑과 평화'를 접하면서 펑크(funk)와 디스코 같은 흑인 음악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집에서 문득 생각난 선율을 연주해서 탄생한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바운스 리듬의 펑키한 색채를 가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독 명반으로 꼽히는 2집의 다른 수록곡의 탄생 배경도 궁금하다.
        앨범을 내야 했기 때문에 여섯 명이 모여서 한 곡 씩 가져오기로 하고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내가 들고 간 곡을 비롯해 여러 곡이 있었지만, 배철수가 옛날에 송골매로서 만든 곡을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기존 만들어 놨던 노래를 여럿 가지고 왔다. 그중 하나가 '세상 만사'와 '내 마음의 꽃'이다.

        특히 '모두 다 사랑하리'는 그 곡으로 < 동경 가요제 >도 나갔지만 < MBC 국제 가요제 >에도 참가했다. 당시 리허설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F# 키였던 곡을 G마이너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편곡을 거친 후에 곡을 발매했다. 당시 가요제를 통해서도 많이 배웠다.

        배철수로부터 '배신'이란 소리를 듣게 된 '솔로' 활동제안이 들어온 것은 언제인가.
        그 전부터 계속 유혹은 있었지만 4집부터 본격적으로 결정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당황스럽게도 논의 과정 중에 음반사 측에서 먼저 보도자료를 뿌려버렸다. 마침 고민하던 시기인 것은 사실이었기에 굳이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록 음악에서 솔로 전향 이후에 발매한 대표곡은 록보다는 가요의 느낌이 크다.
        완벽하게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솔로 가수로 데뷔했기 때문에 도저히 곡이 쓰이지 않았다. 더불어 홀로서기에 대한 부담감도 매우 컸다. 당시 제작자가 나를 자신 의지의 아바타로 세워 조용필과 라이벌 관계로 마케팅 하려고 했다. 그 때문에 당시 조용필의 음악과 같은 콘셉트로 음악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제작자의 역량으로서 잘 작용한 덕에 '희나리'가 국내뿐만 아니라 베트남 등의 해외에서도 히트를 했지만, 속으로는 내 음악을 빼앗긴 기분에 아쉬움이 많았다.


        송골매 때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쓴 곡 중에 가장 자랑스러운 곡은 무엇인가?
        대표곡은 어쩔 수 없이 '어쩌다 마주친 그대'다. 나는 곡을 쓸 때 긴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 아니다. 또 가사가 있어야 멜로디가 나온다. 물론 악상이 먼저 떠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글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있으므로 가사를 먼저 두려 하는 편이다. 때문에 '아득히 먼 곳'도 이야기하고 싶다. 김수철의 '못다 핀 꽃 한 송이'에서 영감을 받은 곡인데 당시 배철수와 이응수가 나에게 두꺼운 책자를 선물해 줬다. 그 안에 있는 글이 곡을 작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4집의 '사슴'도 생각난다. 작사가 이건우가 글을 써서 보낸 곡 중의 하나인데 그가 히트곡을 크게 내기 전에 만든 곡으로, 우리가 부르면 성공하겠다 싶었지만 내 탈퇴로 인해 앨범 판매량이 급감했더라.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만든 곡은 아니지만 같은 앨범에서 김창남이 준 '난 정말 모르겠네'도 좋았다.

        최근 공연한 < 열망 >의 세트리스트가 정말 많았음에도 대부분이 크게 히트한 곡이었다. 새삼 송골매의 거대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는데, 콘서트 소감이 궁금하다.
        28곡을 연습했지만 부른 건 25곡이었다. 아직 송골매로서 공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크나큰 수확이다. 전날까지 리허설을 마치고 충분히 연습했다고 생각했는데 인트로 영상이 무대 위에서 재생되는 순간부터 굉장히 떨리더라. (웃음) 그래서 사실 첫날 무대는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도 목이 타서 물만 많이 마셨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배철수와 함께 일본의 '섬머소닉' 페스티벌을 다녀왔는데 생전 그렇게 큰 무대는 처음 봤다.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 우리가 활동할 당시에는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큰 공연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돌아오면서 언젠가 저런 대형 무대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눴다.


        구창모에게 배철수는 어떤 사람인가.
        옛날에도 비슷한 질문에 답한 적이 있는데, '내 삶의 일부'다. 그 사람을 만나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고 당시부터 쭉 함께했다. 물론 솔로로 활동할 당시에는 조금 소원한 시기도 있었지만 분명한 절친임에 변함이 없다. 서로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게 반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친할 수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음악적으로도 그런 각자의 개성이 도움이 됐다.

        배철수는 별명이 많은데, 냉정한 성격이라는 뜻에서 '배냉정'이라고 부르곤 한다. 자기가 그어 놓은 선을 절대 침범 못 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남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선을 잘 지키는 사람인데, 세월이 흐르니까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런 과정을 다 지켜봤을 정도로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이만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복되고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를 한다.

        앞으로의 음악 계획이 궁금하다.
        우선은 내년쯤부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다시 펼칠 계획을 하고 있다. 올해는 할 수 있는 방송에만 집중하면서 신곡을 준비하는 정도로 하려 한다. 1990년도에 마지막 활동을 했기 때문에, 만약 내년에 앨범을 발매하게 되면 약 34년 만의 새 앨범이 나오게 된다.

        구창모의 삶에서 결정적인 음반이 있다면.
        애드 포(Add 4), 히식스, 키브라더스, 키보이스 등 선배 밴드와 1970년대 통기타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앨범 하나만 꼽자면 송창식의 < 그대 있음에 / 피리 부는 사나이 >. 내가 실제로 샀던 앨범이다.

        진행: 임진모, 장준환, 정다열, 한성현, 백종권
        정리: 백종권
        사진: 정다열
      • 2023/10 백종권(jkjk56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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