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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던 공연이다. 세종문화회관을 꽉 채운 관객들은 막이 오르자, 국악기와 서양 악기로 무대를 꽉 채운 100인조 오케스트라의 위용에 감탄을 내뱉었다. 작은 거인 김수철이 지난 45년간 걸어온 위대한 음악의 발자취를 실현하는 궁극의 형태였다. 1977년 KBS TV <젊음의 찬가>로 데뷔한 이래로 한계 없이 도전하고 쉼 없이 실험했던 그의 경력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말끔한 지휘 연미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김수철은 백전노장이자 영원한 청년 뮤지션의 새로운 전기를 선언하는, 상징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서른도 되지 않은 내가 지금까지 목격한 김수철은 모자에 티셔츠, 청바지 차림의 로큰롤 스타였다. 물론 그 단출한 구성으로도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의 실력에 감탄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세계가 얼마나 넓던가. 1986년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7차례 연속 국제 대회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이자, 예정된 상업적 실패를 감수하고서도 국악의 현대화에 기꺼이 몸을 던진 거장이다. 그가 쌓아 올린 “음악 빌딩”을 오롯이 담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 계획도시의 설계가 필요했고, 그 결과가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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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과 솔로 시절을 기억하는 현장 관객들은 김수철의 음악 대양에서 밀고 들어오는 해일에 휩싸여 넋을 잃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곡 '도약'과 2002년 한일월드컵 주제곡 '소통'이 선사하는 감동은 우리의 기억 속 희미해져 가는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의 기억과, 가난한 전후 국가에서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 선진국으로 도약하던 20세기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일깨웠다.
그 중심에 굳건히 자리한 음악이 바로 김수철이 평생을 바쳐 헌신한 국악이다. 대중은 영화 < 서편제 >의 성과로 그의 국악 인생을 기억하지만, 김수철의 우리 가락 탐구는 1980년대 '못다 핀 꽃 한 송이' 이전부터 계속되었으니, 경력의 대부분을 국악 탐구에 바친 것이라 할 수 있다. < 서편제 >의 '소리길'과 '천년학'의 아름다운 선율과 국악 타악기와 서양 타악기의 비율을 정확히 반으로 나눈 '소통', 방탄소년단의 UN 본부 연설 20년 전 먼저 뉴욕을 방문해 연주한 '기타 산조와 장구'는 김수철의 족적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가 평생의 계획으로 다짐한 '팔만대장경'의 1악장 역시 탄성을 불렀다.
국악은 돈이 되지 않는다. 김수철은 1980년대 솔로 가수로 벌어들인 돈을 국악 연구에 모두 써버렸다. 이는 그가 상당한 업적을 쌓은 지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수철은 공연 내내 '어떤 기업의 후원도 받지 못했다'를 강조하며 공연장에 자리한 소수의 후원자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도 김수철의 사비로 열렸다. 견고한 사명감과 책임감, 문화를 바라보는 올곧은 시선으로 지탱한 45년 경력이다. “돈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어요. 문화가 감동을 주는 겁니다!” 한국 문화 산업이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으나 오로지 산업의 측면으로만 접근하는 이들의 사업 조언만 난무하는 가운데, 묵묵히 탐구와 실험의 길을 걸어온 고독한 거장의 목소리가 가슴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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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김수철의 시선은 따뜻했다. 그는 오후 7시 30분 본 공연 전인 오후 3시에 먼저 한 차례 무대를 마친 상태였다. 환경미화원, 소방관, 경찰관 등 사회에 기여하는 이들을 위한 자선 공연으로 모든 티켓 가격은 천 원이었다. “여러분이 제 음악을 사랑해 주셔서 제가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공연은 예술성도 있지만 김수철의 놀라운 대중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이 가요계 동료들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났는데, '내일'의 성시경과 '정녕 그대를'의 화사, '왜 모르시나'의 백지영이 청년 김수철의 서정성을 복원했다면 이적과 양희은은 '나도야 간다'와 '정신 차려'의 호탕한 외침을 재현했다. 선후배들과 따스한 인사를 나누던 일흔의 거장은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되었음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마에스트로는 익살스럽고 유쾌했다. 객석을 향해 한마디 던질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잘난 척해서 죄송합니다"라며 겸손했지만, 그에게는 단 한 톨의 거만함도 없었다. 지휘석에서 폴짝폴짝 뛰고, 팔을 번쩍 들어 쉴 새 없이 악단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에서 세종문화회관의 모든 사람이 환희와 열정, 기쁨의 감정을 목격했다. 직접 마이크를 잡고 부른 '치키치키차카차카'와 '못다 핀 꽃 한 송이', 20대부터 70대까지 다 같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노래라는 자부심을 담은 국민가요 '젊은 그대'의 아름다운 합창을 마지막으로 김수철의 원대한 꿈이 현실에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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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마무리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는 오늘의 공연을 시작으로 활발한 향후 활동을 예고하였고, 궁극의 목표는 세계임을 굳게 강조했다.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보이며 '앞으로도 계속 건강한 음악을 만들어 나가겠다'라 무대에서 다짐한 그의 의지를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영원한 젊음의 질주 앞에 나이는 무의미하다. 수많은 업적의 대가마저도 이럴진대 젊은 우리가 세월을 눈물과 분노로 허비해서야 되겠나. 역사적인 공연을 찾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뜨거운 외침이 끓어올랐다. 님찾아 꿈 찾아, 나도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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