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이슬 분명히 이때쯤이면, 곡이 정점에 이르면, 한 번 더 지르고 여러 번 꺾어줘야 할 것 같은데 좀처럼 터져주질 않는다. 예전 같으면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 애드리브로 채웠을 자리도 플룻의 청량한 소리만 울릴 뿐이다. 사실, 그의 이런 창법의 변화는 2004년, '나처럼', '눈의 꽃' 때부터 서서히 가다듬어져왔다. 설익은 가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울고, 떠는 탓에 정작 그 발화점(?)이었던 알앤비 가수들이 거꾸로 '소리를 낮춰서 부르겠다'는 의지가 바로 이런 변화와 맞물려있는 것이다.
'눈의 꽃', '나처럼'을 듣고 많은 음악팬들이 보컬이 한 톤 낮아지고, 그 울림이 더욱 진해졌다라고 표현 했는데 당장 이 두 곡으로만 비교해보아도 이번에는 그 농도가 더욱 짙다. 높은 키(key)를 포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한결 낮아진 분위기 탓에 쓰는 가성도 그래서 더욱 매끄럽다. 그렇다고 풍성한 성량에서 나오는 중량감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사운드에 꽉 채워진 스트링의 무게만큼이나 믿음직스럽게 뿌리박고 있다. 거추장스러웠던 장식을 과감히 비워낼 수 있는 모습이 보기 좋고, 그 변화가 참 듣기 좋다.
한동윤 조금의 울먹임도 과도한 바이브레이션도 찾아보기 어렵다. 최대한 힘을 빼고 가성을 적당하게 사용한 부드러운 보컬로 인해 예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느껴진다. 박효신의 주 무기인 '기교의 과용'과 '감정의 극대화'를 내려놓고 차분하게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그의 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효신의 이번 곡을 통해서 최근 들어 소몰이 창법의 붐이 차츰 사그라지고 있음을 더욱 체감하게 된다.
이대화 예전 같으면 세게 불렀을 부분들을 모두 힘을 뺀 채 불렀다. '눈의 꽃'보다 더하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불렀던 노래들이 하나 같이 너무 '과잉'이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