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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s    K-POP
      • 지하음악 비춘 ‘서태지 햇살’
      • DATE : 2000/09   |   HIT : 7846
      • by 안재필
      • 서태지가 선보인 음악은 예상대로 하드코어 성향의 핌프 록(pimp rock)이었다. 본인 말대로 '큰 에너지와 극단적인 광기'가 앨범 전체에 진동한다. 핌프 록이란 랩·메탈·펑크·펑크(funk)가 섞인 하드코어 위에 전자 노이즈 등 여러 음악 요소를 더해 사운드를 더욱 복잡하고 사납게 만든 것을 말한다. 극단적인 음악이 집결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시원하고 달콤한 댄스나 발라드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은 듣기가 괴로울 정도로 소란스럽다. 좌절·패배와 같은 소외된 젊은이들의 일상을 가사에 담아내는 것도 핌프 록의 특징이다. 지금 미국 팝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그룹 콘과 림프 비즈킷이 이 계열의 대표적인 밴드이다.

        서태지가 몰고 온 이 굉음의 폭풍은 '주류음악에 대한 전복'이자 '발랄한 일탈'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음악인이 아닌 음악산업에 의해 움직이는 가요계에 내미는 도전장이다.

        서태지는 앨범을 낼 때마다 과거의 패턴을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고, 또한 그것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냈다. 이번에도 팬들은 그가 은퇴한 후 댄스와 발라드로 뒤덮인 가요 풍토를 그가 재편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9월8일 발매 후 순식간에 70만장이나 팔려나간 음반 판매량에는 서태지라는 이름의 파괴력 외에 변화에 대한 갈망도 깃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태지의 음악이 콘이나 림프 비즈킷의 사운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으며, 더욱이 국내 언더그라운드 밴드들도 이미 이런 음악을 구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수 마니아의 시각이다. 주류 음악과 비교할 때 그의 음악은 분명 '색다르다'. 때문에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국내에 전하고 싶었다"라는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지하 세계에 갇혀 '그들만의 음악'으로 만족해야 했던 음악에 광명을 찾아준 것은 서태지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실 그의 목소리는 크게 내지르는 하드코어 음악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그는 목소리의태생적 한계를 디지털 기술로 극복하여 '서태지식 하드코어'를 꾸려내는 데 성공했다. 예쁘장한 그의 진짜목소리와 다양한 이펙터를 사용해 주조한 가공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매우 이중적이며, 그리하여 노래 안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인터넷 전쟁' '탱크'에서 그의 포효하는 울림은 막강한 사운드에 실려 광채를 발한다. 전체적인 사운드는 흠 잡을 데 없이 선명하다. 각각의 악기 소리가 귀에 잘 들린다. 완벽주의자 서태지의 기술력이 가져온 개가이다.

        하지만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가 결여된 점이 아쉽다. 하드코어의 특성상 사운드에 치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선율로 승패가 판가름 나는 국내 사정을 감안한다면 '하여가'같은 곡이 하나 둘은 있어야 했다. 질주하는 사운드에 발 맞추어 가사 또한 '잿빛 하늘'처럼 어둡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그의 가사는 기성 세대와 사회를 비판하며 동시에 고통으로 숨막힌 소외층 젊음의 정서를 옹호한다.

        '오렌지'는 권위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비판하며, '인터넷 전쟁'은 인터넷의 허실을 파헤친다. 특히 '울트라맨이야'에서는 '너 다시 내게 짓궂게 굴 땐 가만 안 두리라'는 가사처럼 주류로부터 탈락한 계층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1996년 은퇴는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사과하고 싶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과한다"라는 말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컴백한 후 서태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시종 음악인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돈으로 포장된 음악산업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는 하나의 거대 기업이다. 10억원대 CF 계약이 줄을 잇고, 자신의 음반사 '괴수대백과사전'을 통해 엄청난 앨범 수익금이 들어온다. 과연 이러한 아이러니는 극복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서태지가 진정한 음악인으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주저앉느냐의 중대한 갈림길일지 모른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 2000/09 안재필(rocksacrif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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